의심에서 확신으로 14년, “한국 양자 기술, 퍼스트 무버의 기회는 아직 남았다”
한상욱 KIST 양자활용연구거점사업단 단장(사진:본지)
전자공학 연구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한상욱 박사는 현재 한국에서 광기반 양자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됐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활용연구거점사업단 단장과 양자기술연구단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으며, 국내 양자 연구 생태계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다.
KIST 양자기술연구단은 2012년 책임연구원 두 명 규모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구 인력이 크게 확대됐다.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 인턴연구원까지 포함하면 연구 규모도 크게 늘었다. 한 박사는 이러한 변화 자체가 한국 양자 연구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본다.
그의 연구 여정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 전환에서 시작됐다.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중소기업과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의료기기용 엑스레이 센서 연구를 했다. 하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게 됐고, 지인의 소개로 KIST에서 진행 중이던 양자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부터 양자 기술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싱글 포톤을 활용한 연구 설명을 듣고 “빛 알갱이 하나로 뭔가를 한다는 말이 처음에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를 이어가면서 의심은 호기심으로, 그리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느덧 14년이 지나 그는 양자 기술이 결국 산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양자 산업은 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 산업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기회도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박사는 전자공학 배경이 양자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양자 연구는 물리학 중심으로 진행돼 왔지만 산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학 분야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자 상태를 측정하면 결국 전기 신호로 바꿔서 처리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전자공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특히 반도체 회로 설계 경험이 현재 연구와도 직접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센서가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처리하는 방식처럼, 양자 시스템 역시 빛을 측정하고 신호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KIST 연구진은 광자 기반 양자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양자 상태 생성, 제어, 측정 기능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검출기 집적과 손실 저감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그는 양자 산업이 이미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한다. 과거에는 대학 연구실과 연구기관 중심으로 진행되던 분야였지만 최근에는 기업과 투자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는 시점이 산업 태동기의 신호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산업화 시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기업은 3년, 엔지니어는 5년, 기초 과학 연구자는 10년 정도를 전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한 시점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고성능 컴퓨팅(HPC)과 결합하는 형태로 먼저 산업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HPC와 양자컴퓨터가 결합했을 때 기존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나타나면 그때 산업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현재 양자컴퓨팅은 초전도, 이온트랩, 중성원자, 광자 기반 등 여러 기술 플랫폼이 경쟁하는 단계다. 그는 이 시기를 “승자를 가리는 단계가 아니라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광자 기반 기술의 중요한 장점으로 상온 동작 가능성을 꼽았다. 현재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는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지만, 광자 기반 기술은 상대적으로 환경 제약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되려면 우리 주변 환경에서 동작해야 합니다.”
한국이 양자 기술 경쟁에서 가질 수 있는 강점으로 그는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강조했다. 양자컴퓨터와 센서 역시 결국 소자와 칩, 그리고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큐비트를 많이 만들고 안정적으로 동작시키는 과정은 결국 제조 기술과 연결됩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개방형 양자 팹(Open Quantum Fab)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연구자 선발 기준에 대한 질문에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저는 체력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 인성입니다.”
양자 연구는 장기간 반복적인 실험과 실패를 견뎌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양자 기술은 다양한 분야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융합 연구이기 때문에 협력할 수 있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문제를 선택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그는 기술 분야 선택에 대해 비교적 단순하지만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학생들과 인턴 연구원들을 만나면 “인공지능(AI)을 해야 할까요, 양자를 해야 할까요, 반도체를 하는 게 맞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질문 자체가 ‘어떤 분야가 앞으로 잘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AI를 할지 양자를 할지, 반도체를 할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분야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술의 흐름은 빠르게 변한다. 지금은 유망해 보이는 분야라도 10년 뒤에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반대로 지금은 주목받지 않는 기술이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는 기술 선택을 ‘유행’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신 그가 강조하는 기준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다.
“정말 어려운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쉬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근할 수 있고 해결 방법도 빠르게 공유된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쉬운 문제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연구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본 사람은 다른 문제를 만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해결될 때까지 붙잡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말한다.
“이 문제가 정말 어려운 문제인가.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는 문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하다면, 분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시 한번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양자 산업은 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는 양자 기술이 단기간에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기존 산업과 결합하며 점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에도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같이 움직여야 산업이 만들어집니다.”
양자 기술 역시 연구자와 기업, 정책과 투자, 그리고 다양한 산업 주체들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는 본지 자매지 양자신문에서 진행했으며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
전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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