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앤 공주와 HD현대 정기선 회장이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최근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 공주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를 방문하면서, 교육계에서는 반세기 전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부에서 피어났던 울산대학교(구 울산공과대학)와 영국 정부·왕실 간의 특별한 '교육 동맹'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산업도시 울산을 대표하는 종합대학으로 우뚝 선 울산대학교의 출발점에는,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초석을 놓기 위해 손을 맞잡았던 한국과 영국의 숨은 협력사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흔히 현대가와 영국의 인연이라고 하면 고 정주영 창업자가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으로 차관을 빌려온 일화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영국의 지원은 비단 거대한 조선소 건립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본격화하던 대한민국 정부는 산업 현장을 이끌 '고급 기술 인력'의 부재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곳이 바로 영국 정부였다. 영국 해외개발성(ODA)은 기술교육 전문가를 파견해 울산을 공학교육의 최적지로 낙점하고 대학 설립을 공식 제안했다. 이 제안을 이어받아 정주영 회장이 초대 이사장으로 나서며, 1970년 3월 대한민국 정부와 영국 정부, 그리고 민간 기업이 합작한 최초의 국제 교육 협력 모델인 울산공과대학이 탄생하게 된다.
1971년 체결된 '한·영 협정'은 울산대를 첨단 공학 교육의 요람으로 키워내는 기폭제가 됐다. 영국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3배 이상 늘린 32만 파운드의 파격적인 재정을 투입해 최신 실험실습 기자재를 공급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영국의 선진 교육 시스템이 대학의 DNA에 그대로 이식되었다는 사실이다. 울산대는 국내 최초로 영국식 산학협동교육(Sandwich System)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실습하고, 산업체 기술자가 직접 강단에 서는 이 혁신적인 모델은 대한민국 공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영국 정부는 자국 교수들을 울산에 상주시키며 교육의 질을 끌어올렸고, 이러한 끈끈한 유대감 덕분에 1990년대까지 주한영국대사가 매년 울산대 졸업식을 찾아 '영국대사상'을 직접 수여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기도 했다.
비록 앤 공주가 이번 방한길에 울산대 캠퍼스를 직접 밟지는 못했으나, 그녀가 방문한 HD현대중공업의 거대한 야드와 울산대의 역사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났다. 정주영 창업자가 영국과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운 '산업'과 '교육'이라는 두 축이 오늘날 한국 조선업의 번영과 산업 인재 양성의 핵심 기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울산대학교 관계자는 "이번 영국 왕실의 울산 방문은 반세기 전 울산대 설립의 초석을 놓아준 영국 정부와의 깊은 인연과 고마움을 다시금 환기하는 뜻깊은 계기"라며, "영국의 선진 교육 시스템을 자양분 삼아 대한민국 성장을 견인해 온 울산대학교는 이제 그 유산을 발판 삼아 세계적인 글로컬 대학으로 도약하며 또 다른 50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민기자 usk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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