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메디슨 종목 출전하는 학생선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파트너 사이
자전거 타는 게 좋아서…사이클 선수로
(8) 오늘만 노메달 박지우·최백겸
스포츠는 결과로 기억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걸 수는 없습니다.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시간이 덜 값진 것은 아닙니다. ‘노메달’은 오늘의 결과일 뿐,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노메달일지라도, 내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다시 훈련장으로 향합니다. <경남도민일보>가 메달보다 먼저 땀을 흘린 선수들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창원경륜장 실내 경기장에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는 사이클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김구연 기자
22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창원경륜장 실내 경기장. 사이클 선수 19명이 트랙을 돌았다.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상체를 웅크린 채 페달을 밟았다. 조금이라도 바람 저항을 줄이는 일이 기록과 승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페이스 하나씩 올려주고!”
감독의 구령이 떨어지자 바퀴는 더 빠르게 돌아갔다. 선수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속도를 높였다. 한 바퀴 약 330m인 트랙을 세 바퀴를 돌면 1㎞에 가깝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 몸을 달구는 데만 20분가량을 쓴다. 선수들은 이날 35바퀴 안팎을 돌았다.
트랙에서 내려온 선수들은 장비를 점검했다. 사이클 선수에게 자전거는 몸 일부나 마찬가지다. 박지우(18)는 바퀴를 손으로 눌러 공기압을 확인했고, 최백겸(17)은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풀어 시합용 바퀴로 교체했다. 체인을 다시 걸어 손으로 바퀴를 돌리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앞바퀴와 뒷바퀴
두 선수는 김해건설공고 소속이다. 이들은 이달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사이클 메디슨 종목에 함께 출전하는 파트너다.
메디슨은 두 선수가 한 팀을 이뤄 교대하며 달리는 트랙 사이클 종목이다. 두 선수 모두 트랙 위에 있지만 한 선수가 빠르게 달리는 동안 다른 선수는 천천히 돌며 체력을 비축한다. 손이나 반바지를 터치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바꿔가며 경기를 이어간다.
결승선을 통과한 순서에 따라 1위부터 4위까지 각각 5·3·2·1점을 얻는다. 완주한 바퀴 수가 많은 팀이 우선하고, 주파한 바퀴 수가 같으면 중간 스프린트(경기 중간에 실시하는 순위 경쟁)에서 얻은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린다. 한 선수가 체력을 아끼는 동안 다른 선수가 경기 흐름을 이어주고, 포인트가 걸린 순간에는 빠르게 치고 나가는 두 선수의 호흡이 중요하다.
김해건설공고 소속 박지우(왼쪽·18)와 최백겸(오른쪽·17)이 22일 창원경륜장 실내 경기장에서 훈련 준비를 마치고 서 있다. /김구연 기자
자전거가 앞바퀴와 뒷바퀴로 굴러가듯이 두 선수도 경기장에서 하나가 된다. 앞바퀴와 뒷바퀴의 역할은 다르지만 어느 하나만 돌아서는 자전거가 앞으로 갈 수 없다. 두 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굴러야 결승선에 닿는다.
박지우는 전력 질주에 강하다. 짧은 순간 페달에 폭발적인 힘을 실어 단숨에 속도를 끌어 올린다. 포인트가 걸리는 구간이나 결승선을 앞두고 상대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역할을 한다.
최백겸은 ‘지속주’ 역할을 한다. 순간적인 최고 속도보다 높은 속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긴 거리를 달리더라도 일정한 페이스를 잃지 않고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제가 전력 질주하면, 백겸이는 유지하는 역할을 해요. 제가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서 포인트를 먹으면 그때 백겸이가 버티면서 교대해주죠. 제가 다시 포인트를 먹을 수 있도록요.”
박지우의 말이다. 그가 포인트를 노릴 때는 순간적인 가속력이 무기가 된다. 반대로 그 순간까지 경기 흐름을 놓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최백겸의 몫이다. 최백겸이 긴 거리를 끌어주면 박지우는 체력을 비축했다가 다시 속도를 끌어올린다.
두 선수는 서로에게 부족한 힘을 보태왔다. 6월 강원도 양양에서 열린 전국사이클선수권대회 단체추발 경기에서도 둘은 함께 달렸다. 단체추발은 4명이 한 팀을 이뤄서 진행하는 경기다. 상대 팀을 추월하거나 더 빠른 기록을 내는 식으로 경기가 이뤄진다. 선수들이 번갈아 선두에서 달리면서 힘을 배분한다.
박지우는 “종목을 바꾼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힘이 없었다”라며 “백겸이가 더 많이 끌어주고 그래서 같이 완주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백겸도 박지우의 힘을 빌렸다. 올해 7월 경북 김천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도로사이클대회에 나섰다.
박지우가 앞서 나간 그룹을 따라잡는 일에 힘을 보태면서 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최백겸은 “형이 많이 이끌어주고, 골인 지점까지 잘 치고 나갔다”라며 “형이 앞에서 그룹을 잡아준 덕에 메달을 땄다”라고 말했다.
김해건설공고 소속 박지우(왼쪽·18)와 최백겸(오른쪽·17)이 22일 창원경륜장 실내 경기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자전거 타는 게 좋아서
박지우는 ‘사이클 가족’으로 자랐다. 아버지는 부산경륜공단 소속 박성호(44)다. 형 박지환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실업팀에 속해있다. 어머니 구여진은 사이클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박지우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이클을 접했다. 어머니가 김해에서 사이클 실내연습장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는 일상이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마련해 준 로드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고, 중학교 1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지우는 엄마를 닮은 거 같아요. 저는 단거리 선수고, 엄마는 중장거리 선수거든요. 아이들은 다 단거리를 하고 싶어 했어요. 지우는 근력이나 심폐가 중장거리에 맞는 거 같아요.”
박성호는 박지우에게서 아내 모습을 본다. 어릴 때도 엄마와 아들이 사이클 내기를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엄마를 못 따라갔지만, 이제는 곧잘 탈 수 있게 됐다.
박지우도 사이클 재미에 빠졌다. 그는 “기록이 잘 나오고, 바퀴가 잘 굴러가면 재미가 있다”라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메달을 많이 땄는데 그 재미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백겸은 다이어트 때문에 처음 사이클을 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165㎝ 80㎏이었다. 취미로 사이클을 하던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 권유로 시작한 사이클 덕분에 3달 만에 10㎏ 감량에 성공했다.
최백겸은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고, 페달을 굴리는 느낌도 좋다”라며 “지난해 첫 메달을 따봤는데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메달을 따는 일이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두 소년이 그리는 다음 길
두 선수는 부상을 입고 이겨 나가고 있다.
지난해 8월 박지우는 훈련하다가 앞에서 넘어진 선수에게 걸려 함께 쓰러졌다. 엉덩이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3주 동안 입원했다. 다른 근육을 쓰려고 하다가 자세가 틀어지기도 했다.
최백겸도 지난해 12월 훈련하다가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다가 미끄러진 탓에 쇄골이 부러졌다. 10일 입원하고 나와서 3일 동안 쉬다가 훈련을 시작했다. 사이클은 낙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래도 둘은 사이클을 계속할 생각이다. 이제는 얼마나 빨리 달릴지만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어디를 어떻게 달릴지를 생각한다. 학생 선수에게 진로 고민은 숙제로 남아 있다.
박지우는 “중장거리 실업팀에 가고 싶다. 사이클을 안 하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라며 “국가대표가 돼 다른 사람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최백겸은 도로 종목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유럽 팀이 목표고, 동남아 쪽으로 천천히 시작해서 국외 진출도 해보고 싶다”라며 “도로 사이클이 국외에서 대회가 많고, 발전도 많이 돼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두 선수는 이달 열리는 전국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박지우는 지난해 전국체육대회에 단체 스프린트에 출전했지만 메달 없이 돌아왔다. 올해는 메달을 목표로 달리려 한다. 전국체육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최백겸의 목표도 같다.
오늘은 메달이 없어도 페달은 멈추지 않는다. 두 선수는 그렇게 각자의 내일을 향해 내달린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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