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한현우 보건학 박사·전 이화여자대학교 외래교수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 하나로 꼽힌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 원인 중 암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위암, 대장암, 폐암, 간암, 전립선암, 췌장암 등 주요 6대 암의 위험은 우리 삶 곁에 늘 도사리고 있다.
역학 및 보건학적 관점에서 질병의 발생 원인을 설명할 때, 암은 단순히 어느 한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소인, 숙주 요인, 생물학적·물리화학적·사회적 환경 요인이 마치 복잡한 망처럼 얽혀 영향을 미치는 ‘거미줄망 모형(Web of Causation)’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특히 주목하고 희망을 가져야 할 사실은 전체 암 발생의 약 80% 이상이 식이습관, 흡연, 음주, 만성 염증, 스트레스, 과로, 비만 등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생활습관 및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암이 회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과 행동을 통해 충분히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질환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의 고유한 생태학적 특성과 전략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정상 세포는 일정한 주기에 따라 분열하고 사멸하며 체내 균형을 유지하지만, 암세포는 사멸 신호를 무시하고 무한히 분열하는 ‘고장 난 브레이크’와 같다.
암세포는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스스로 신생 혈관을 촉발하여 자체 보급로를 확보하며, 면역 억제 단백질을 내뿜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속이는 교묘한 위장술을 펼친다. 또한 이웃 조직을 파괴하며 침투하는 침윤 작용과 혈관 및 림프관을 타고 원격 장기로 퍼져나가는 전이 특성을 지닌다. 유해 세균의 성장 환경과 비슷하게 암세포는 포도당과 글루타민을 과도하게 탐식하고, 체내의 만성 염증 환경, 저산소 및 산성 환경(pH 6.0~6.5)을 토양 삼아 기생하듯 생존을 이어간다.
우리는 이처럼 지능적이고 집요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암세포에 맞서 어떻게 내 몸을 지켜내야 할까요? 그 해답은 우리 몸 안에 이미 존재하는 고유의 ‘창’과 ‘방패’, 그리고 이를 지휘하는 ‘정신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첫째, 암세포를 능동적으로 제압하는 공격력에 해당하는 ‘창’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항산화·재생 시스템이다. 암세포를 직접 탐지하고 파괴하는 NK세포(자연살해세포), T세포, 대식세포의 면역 감시 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세포 내 활성산소를 제거해 DNA 손상을 막는 항산화 효소 체계를 가동하고, 변형된 비정상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아포토시스(Apoptosis, 세포사멸) 기전을 원활히 작동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브로콜리의 설포라판(Sulforaphane), 양배추의 인돌-3-카비놀(Indole-3-Carbinol), 마늘의 알리신(Allicin), 토마토의 라이코펜(Lycopene), 콩의 이소플라본(Isoflavone), 버섯의 베타글루칸(Beta-glucan), 갈색 해조류의 후코이단(Fucoidan) 등 항산화 및 항암 물질이 풍부한 식품을 매일 꾸준히 섭취하는 항암 식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둘째, 암의 발생과 침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방어력에 해당하는 ‘방패’는 올바른 생활습관과 예방적 환경 구축이다. 암세포가 좋아하는 설탕과 고당분 음료, 가공육, 탄 음식과 직화구이, 짠 절임 식품, 패스트푸드 및 과도한 알코올을 멀리해야 한다. 대신 다양한 채소와 과일, 통곡물, 발효식품 위주의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주 5회 이상, 하루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의 규칙적인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B형 간염과 인두유종바이러스(HPV) 예방접종을 통해 감염성 발암 인자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이에 더해 정기적인 국가 암 검진을 통해 용종이나 초기 병변을 조기에 발견하여 제거하는 정밀한 예방적 방어막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창과 방패를 지혜롭게 지휘하는 가장 강력한 ‘지휘관’은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과 긍정적인 정신력이다. 서양의 고전 우화인 페스트균 이야기에서 페스트균은 5천 명을 죽이러 갔으나 실제로 5만 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4만 5천 명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닌 ‘두려움’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암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몸의 자가 치유 능력을 무너뜨린다. 희망과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나는 내 몸의 주인이 되어 끝까지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치료 의지와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몸의 면역 스위치가 온전히 켜지고 치유의 기적이 생겨난다.
오늘날 암 치료 분야는 정밀의학 기반의 맞춤 치료,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비약적 발전, 로봇 수술 등 현대 의학의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과거에 비해 5년 상대생존율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치료제와 예방책은 결국 우리 몸 내부에 존재하는 자가 면역력과 바른 생활습관이다. 암이 좋아하는 만성 염증과 저산소 환경을 차단하는 튼튼한 방패를 세우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날카로운 창을 다듬으며, 두려움을 뛰어넘는 강인한 마음의 지휘관을 세울 때,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건강하고 가치 있는 삶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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