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월산동 소재 엔덤 작업실에서 김잠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남에서 청년 창업인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번뜩이는 창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종잣돈이 없으면 제품화도, 지속 가능한 사업도 실현시키기 어렵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창업 트렌드에 맞춰 제품 개발 방향을 수정하는 일도 놓을 수 없다. 창업 사업주로서 직원 인건비도 감당해야 하는 현실도 덤이다.
“아이디어를 선물처럼 여겨라”라 말하는 광주 청년 창업인이 있다. 드론 영상 촬영 전문스타트업 김잠언(43) 엔덤 대표다. 그는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창업지원기관에서 창업자금을 지원받고 다양한 시도와 실패로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엔덤 김잠언 대표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낙화잔향’을 제작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걸 좋아했던 김 대표는 일찍이 창업을 꿈꿨다.
조선대 재학 시절에는 재테크 동아리(FRi) 회장을 하면서 학내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도 틈틈이 지원했다. 오토바이 헬멧 전면에 디스플레이를 구현시킨 제품부터 반동이 있는 에어소프트건(물총), 블루투스로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까지 유도하는 장치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 부모님 도움 없이 받은 상금으로 학비를 벌었다.
“아이디어에 일가견 있다”는 그에게도 실제 창업은 현실의 문턱에 막혀 쉽지 않았다. 1000만 원 가량으로는 간단한 시제품 제작비밖에 쓸 수 없었다. 특허 출원과 등록비도 필요한데, 최소 200~300만 원이 필요하다.
그러던 그가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창업 자금 지원 덕택이었다.
영어 강사 뛰며 지켜낸 창업 아이디어
남구 월산동 소재 엔덤 작업실에서 김잠언 대표가 제작한 영상을 검수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실시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에서 1300만 원 지원을 시작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지원금까지 더해지면서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에 고용노동부 청년일자리 도약 장려금과 중소벤처기업부 고용지원금을 지원받은 덕택에 직원을 10명까지 고용할 수 있었다.
탄탄한 지원과 직원들 역량이 더해지면서 일감 수주도 늘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낙화잔향’ 제작부터 이디아, 벤츠, 기아 일반기업 홍보 영상, 금남로 차없는 거리에서 광주물총축제 참여 시민들에 섞여 영상 등을 제작했다.
김 대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청년 창업인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도움을 받았다”며 “집안에 돈이 많지 않은 이상 대부분 청년들은 현실에 가로막혀 창업에 실패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도 다른 청년들처럼 생계를 해결할 방법을 오래 궁리했다. 안정적인 소득을 영위할 새로운 창업 아이템이 고갈되면 언제든지 생계 위협에 처할 수 있어서다. 자금 압박은 창업 스타트업의 미래를 더 악화시키는 고리로 작용하곤 한다.
이에 김 대표는 영어를 독학해 목포시에서 열린 유소년청소년국제대회 국제 통역사 알바를 하거나 학원에서 영어 과외 강사를 하며 벌이를 이어갔다. 그러다 창업 아이디어가 생기면, 창업 지원기관(광주테크노파크, 광주창경센터) 공모를 노렸다.
창업 아이템은 청년들의 중요한 자산이면서도 역설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은 기관에서 지원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기에만 매몰되면 지속가능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저 또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아 타이거즈 응원봉 1500개 판매를 계획한 적이 있다. 이조차도 호남에는 응원봉을 제작해줄 공장이 마땅치 않아 서울과 부산 출장을 많이 다녔다”며 “가까스로 공장을 알아내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팬들에게 싼 값에 판매했다”며 회상했다.
이어 “개발이 늦어지거나 트렌드에 맞추지 않으면 심사위원들이 탈락시키곤 하는데,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야 한다”며 “저금리로 창업자금 대출을 받을 길이 열려 있지만, 때에 따라선 자금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어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건 수많은 실패였다”
엔덤 김잠언 대표가 창업 초창기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받은 상장.
또 “한 때 저도 무리해서까지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회사 덩치를 키웠다가 힘들었던 적 있다”며 “청년들에겐 사업을 영위할 리스크가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즘 영상 업계에도 AI(인공지능) 바람이 불면서 업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어 김 대표도 고민이 깊다. 이미지는 물론, 시나리오부터 영상까지 손쉽게 제작이 가능해지는 AI 기술력이 급성장해서다.
김 대표는 “불과 1~2년 전부터 클링, 힉스필드와 같은 유료 AI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영상뿐만 아니라 광고 마케킹 업계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주변 창업인을 들어보면, 직원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회사 파산이나 개인회생까지 하는 사례도 발생할 만큼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년 창업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김 대표. 특히 최근 전국민 누구나 참여 가능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창업 생태계를 다변화할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자기만의 차별성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구현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창업 장벽을 낮추려 독려하는 건 분명 좋은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대표는 예비창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만의 아이디어를 선물처럼 여겨야 한다.”
대학교 때부터 천천히 거창한 아이디어보다는 실생활에 도움되는 아이디어를 발굴해 창업을 향한 문을 두드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대한 어릴 때부터, 사소하지만 일상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시도와 공모전 지원에 많이 참여하는 게 창업인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자기 생계를 최소한 유지해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다듬는 시도조차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문석 기자 m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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