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같은 경기라도 누가 마이크를 잡느냐에 따라 보는 맛이 달라진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방송사들이 ‘중계 스타’ 확보전에 나섰다. 축구·야구 스타 출신 해설위원은 기본이다. 전현무와 장성규가 직접 캐스터석에 앉고, 강남이 개막식을 설명한다. 아이브 레이와 리센느는 각 방송사의 아시안게임 얼굴이 됐다.
이번 대회는 오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일본 아이치현과 나고야 일대에서 열린다. KBS·MBC·SBS 지상파 3사뿐 아니라 TV 조선과 스포츠 전문채널까지 중계 경쟁에 뛰어들면서 선택지가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예능의 문법을 끌어들인 곳은 KBS다. KBS는 일본 나고야 출신인 아이브 레이를 중계방송 ‘홍보 요정’으로 발탁했다. 레이는 홍보 영상에서 직접 고향 나고야를 소개하고 국가대표 선수와 해설진을 알린다. 실제 경기 캐스터는 아니지만 젊은 시청자를 중계 앞으로 끌어오는 얼굴 역할을 맡은 셈이다.
중계석에도 변화가 있다. 방송인 강남은 김문정 음악감독, 이재후 캐스터와 개막식 생중계를 맡는다. 양궁에서는 장성규가 기보배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춘다. 축구 이영표, 야구 박용택·김태균, 수영 정유인 등 기존 스포츠 스타 라인업 위에 예능인을 얹었다.
이는 의도적인 변화다. KBS 스포츠센터 측은 기존 중계의 다소 진중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스포츠와 예능의 결합을 강화하고 예능인을 중계에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성만큼 ‘재미’를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MBC의 전략은 ‘검증된 조합+K팝’이다. 축구에서는 김성주가 캐스터로 나서고 안정환·서형욱이 해설을 맡는다. 야구는 김나진 캐스터와 정민철·오승환, 농구는 하승진 등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 출신 해설위원이 포진했다. 여러 국제대회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인물을 전면에 배치해 익숙함과 전문성을 함께 가져간다.
대신 중계 밖에서는 걸그룹 리센느가 움직인다. MBC는 리센느를 방송 홍보대사로 내세워 대표팀 응원 메시지와 개최지 소개 콘텐츠 등을 제작한다. ‘일타강사 리센느’처럼 아시안게임 자체를 예능·디지털 콘텐츠로 가공하는 방식이다. 김성주·안정환으로 기존 스포츠 시청자를 붙잡고 K팝 스타를 통해 스포츠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층까지 끌어들이는 투트랙 전략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캐스팅은 SBS 전현무다. 전현무는 배성재·정우영과 함께 SBS 아시안게임 캐스터로 나선다. 특히 높이뛰기와 양궁 리커브 경기 중계를 맡는다. 지난 북중미 월드컵에서 축구 중계에 도전한 데 이어 종목을 넓혔고, SBS 스포츠 중계석에 앉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양궁 중계를 앞두고 임동현 해설위원과 경기 영상을 보며 점수 체계와 전문 용어를 익히는 리허설 과정도 공개됐다.
SBS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캐스터의 준비 과정 자체를 예능으로 만든다. 전현무와 배성재가 출연하는 2부작 특집 ‘나고야 갈고야’에서는 국제대회 중계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현지 중계진의 하루, 메달리스트의 뒷이야기 등을 보여준다. 스포츠 중계를 예능의 소재로 다시 판매하는 셈이다.
TV 조선은 연예인보다 ‘스포츠 스타 파워’를 택했다. 야구 추신수, 축구 구자철, 농구 현주엽, 사격 김예지 등을 해설진에 배치했다. 이 밖에도 펜싱 신아람, 양궁 윤미진, 골프 박진이 등 국가대표 출신이 대거 합류한다. 배기완·서기철·이광용·정용검·김정근 등 경험 많은 캐스터들과 종목별 스타를 붙여 전문성과 인지도를 동시에 가져가는 방식이다.
스포츠 전문채널은 오히려 반대쪽으로 간다. SPOTV는 연예인 캐스팅보다 종목별 전문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농구 김주성, 야구 김병현·이대형 등 선수 출신 해설진이 참여하고 e스포츠에서는 전용준 캐스터와 ‘클템’ 이현우, ‘노페’ 정노철이 다시 호흡을 맞춘다. 온라인에서는 주요 경기를 무료로 제공해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도 병행한다.
방송사들의 선택은 다르지만 향하는 곳은 같다. 과거 국제대회 중계의 경쟁력은 좋은 화면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느냐에 가까웠다. 지금은 기본적인 중계 기술이 상향 평준화됐다. 같은 경기, 같은 득점 장면을 놓고 방송사들이 경쟁해야 하는 만큼 결국 시청자가 채널을 고를 이유를 ‘사람’에서 찾는다.
전문 스포츠 캐스터 역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배성재나 김성주처럼 이미 중계 자체로 팬층을 확보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전현무·장성규처럼 예능에서 익숙한 방송인을 투입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시도도 이어진다.
해설위원도 마찬가지다. 경기 경험을 전달하는 전문가라는 역할을 넘어 선수 시절의 인지도와 캐릭터, 예능감을 함께 요구받는다.
결국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만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대한민국의 금메달 순간을 어느 방송사로 볼 것인지 결정하는 또 하나의 경쟁이 중계석에서 벌어진다.
스포츠 중계의 승부도 이제 기록만큼 캐릭터가 중요해졌다. 마이크 앞에서도 ‘스타 전쟁’이 시작됐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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