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맞아요? 1603원?” 인천국제공항 환전 창구를 찾은 직장인 박모 씨는 고시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5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45.30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인천공항 은행 창구의 달러 현찰 매도율이 1600원 선을 돌파했다.
공항 창구 환율이 시장 환율을 웃도는 건 구조 탓이다. 은행별 스프레드와 수수료가 더해지는 데다, 출국 직전 환전 수요가 몰리는 공항 지점은 시내 지점보다 우대율이 낮다. 시장 환율이 1550원 수준이어도 창구 매도율이 1600원을 넘기는 이유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까지 13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란 간 종전 협상 교착과 군사 충돌 확대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이 주된 상승 동력이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도 압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달 7일 이후 이날까지 20거래일 연속 순매도가 이어진 가운데 누적 규모는 66조 원을 넘어섰다. 당국도 진화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쏠림 현상에 즉각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은 무덤덤했다.
소비 현장은 이미 달라졌다. 달러화 결제 비중이 높은 해외 직구(직접구매) 수요가 빠르게 위축됐다. 제품 가격에 배송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관련 커뮤니티에는 “물건보다 배송비가 더 무섭다”는 글이 쌓이고 있다.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학비·생활비 부담을 이유로 귀국 시점을 앞당기거나 진학 계획을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이 부담은 한국에 남은 가족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지난해 아들을 미국 뉴욕 소재 대학에 입학시킨 기러기 아빠 김모 씨는 “내년에는 차라리 군대부터 다녀오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사립대 연간 등록금이 통상 5만 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환율이 1300원대에서 최근 1500원대 중반까지 치솟는 동안 원화 기준 등록금 부담만 연간 1200만 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해외여행 경비 부담도 크게 불어났다. 환율이 1300원대이던 시기와 비교하면 같은 달러화 지출에 원화 기준 비용이 약 15% 더 든다. 항공권·숙박·현지 카드 결제 모두 달러 또는 현지 통화 기준인 탓에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질 상승 폭은 이보다 더 크다.
정부는 외환당국 개입 여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기대치는 낮다. 구두 개입이 반복됐음에도 환율 방어선이 연이어 무너진 전례가 있어서다.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과 중동 사태 장기화라는 대외 변수가 해소되지 않는 한 고환율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금융시장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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