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도심 한복판을 시속 40km로 달리는 차량의 운전석. 핸들을 잡아야 한다는 본능적 충동이 사라지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이날만큼 와닿은 적이 없다.
테슬라 완전자율주행(FSD) 감독형이 탑재된 모델S가 좌회전 깜빡이를 스스로 켜고 1차선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자율주행이라는 미래가 더 이상 미래형 시제가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쏘카가 카셰어링 사업자로서 축적한 데이터 자산을 자율주행이라는 신사업으로 확장하는 첫 접점이 시민의 일상으로 성큼 들어왔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서울숲 디타워 일대에서 27일 테슬라 모델S와 모델X 차량의 FSD 감독형 기능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구독 서비스 '쏘카구독'을 통해 일반 이용자도 주·월 단위로 해당 차량을 빌려 자율주행 보조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모델S와 모델X는 국내 약 3000대만 수입된 희귀 플래그십 전기차로 1대당 가격이 1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리고 쏘카는 차량공유 업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이들 차량을 대규모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시승차량. 사진=최진홍 기자
운전석에 앉아 인생을 논하다
배정된 차량은 2026년형 모델S다. FSD 감독형 최신 버전(v14.1.4)이 적용됐으며 8대 이상의 화려한 조명이 아니 카메라가 차량 사방을 감싸고 있다.
주행 코스는 디타워 앞 도로변에서 출발해 성수 도심을 약 5km 왕복하는 구간. 동승석에는 쏘카 관계자가 앉아 코스를 입력하고 주행 상황을 안내했다.
운전석에 앉았다. IT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상 자율주행차량 시승은 꽤 했다고 자부하지만 운전석에 직접 앉아본 경우는 없어 더 신선하다. 대부분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시승을 했는데 운전석이라니. 쏘카의 꿍꿍이가 무엇일까. 대물 1억정도 나와야 정신을 차리려나.
오만가지 생각에 어버버 거리는 사이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운전대를 잡을까? 백팔번뇌가 온 몸을 폭행하는 정신없는 순간 조수석의 쏘카 관계자가 미륵보살처럼 웃는다. "그냥 즐기세요"
그래서 그냥 즐겨봤다. 그러자 이내 노련한 테슬라 FSD의 매직이 시작된다. 먼저 시작 단계에서 3차선에 있던 차량은 좌회전 구간이 다가오자 스스로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근차근 1차선으로 차로를 바꿨다. 지금이니?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모델S는 그런 내 마음을 비웃듯이 유려하고 화려한 무브먼트로 모든 구간을 깔끔하게 피해갔다.
전방 2차선에 정차한 택배 차량이 시야에 들어올때도 있었다. 그러나 차량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며 거리를 확보했다. 왼쪽 차로에서 다른 차량이 끼어들기를 시도해도 모델S는 조급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상대 운전자의 의도를 살피듯 차근차근 속도를 조절하며 끼어드는 차량의 동선을 읽어내는 모습이었다. 사람 운전자가 흔히 하는 '간을 보는' 판단을 알고리즘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자율주행은 매끈하게 진행된다. 사진=최진홍 기자
전방에 화물 차량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도 인상적이었다. 차량은 가벼운 제동으로 거리를 벌린 뒤 흐름이 풀리자 다시 부드럽게 가속에 들어갔다. 시속 40km 제한 구역에 진입하는 순간에는 알아서 속도를 줄였고, 직진 신호가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회전교차로 구간에서는 좌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운전자보다 먼저 인식해 멈춰서기도 했다.
20분 남짓한 주행을 마치고 출발지에 돌아왔을 때 차량은 주차까지 스스로 마무리했다. 운전자는 전방 주시 의무를 지키기만 하면 됐다. 룸미러 위 카메라가 운전자의 시선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을 팔면 알림이 울린다는 게 동승한 쏘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조수석의 쏘카 관계자는 시승 내내 자사 데이터의 강점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한국 도로 환경에 특화된 데이터 자산이 어째서 자율주행의 결정적 무기가 되는지, 카셰어링과 자율주행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때마다 차량은 마치 그 설명을 증명하듯 주변 상황을 정확히 처리해 나갔다.
사이사이 인생을 논하는 시간도 있었을 정도로 편안---했다. 너무나 편안해서 기분이 묘할 정도였다. 자율주행이 더 이상 실리콘밸리의 데모 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도심에서 일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편 쏘카가 운영 중인 모델S와 모델X 구독 요금은 1주일 149만원, 1개월 399만원이다. 12개월 약정으로 가면 월 343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가격대는 분명 만만치 않다. 다만 지난달 진행한 10일간의 사전예약에서 2000건이 넘는 신청이 몰렸다는 점이 시장 반응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인기 요인은 지나치게 여러가지다. 먼저 테슬라를 경험하는 것.
일반적인 렌터카나 카셰어링으로는 테슬라 플래그십 차량을 경험하기 어렵다. 일부 장기렌터카 업체가 테슬라 차량을 취급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1~2년 이상 약정의 리스 형태다. 모델X와 모델S가 지난달 31일을 마지막으로 신규 주문이 종료됐다는 점도 희소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FSD 감독형이 차량에 기본 내장된 형태로 출고되는 구조도 차별점이다.
쏘카 측은 "최신 이동 기술을 가장 빠르게 이용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모빌리티 기술을 시장에 안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테슬라식 데이터 구조의 한국형 복제
시승을 마친 후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단 하나의 생각이 있다. 쏘카가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테슬라 차량을 끌어들여 구독 서비스라는 형태로 시장에 풀었을까?
데이터를 흘려보내고, 모으고, 가공해 다시 학습에 투입하는 거대한 데이터 파이프라인.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구축한 그 구조를 쏘카가 한국에서 그대로 복기하려 한다는 사실이 시승의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게 시승이 끝나고 터덜터덜 지하철 역으로 나아가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호두과자 집에서 직원이 말아주는 호두과자 한알을 쏙 먹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쏘카가 자율주행 사업의 무기로 내세우는 건 전국 2만5000대의 카셰어링 차량과 거기서 매일 뿜어져 나오는 데이터다. 그리고 쏘카 차량에는 자체 텔레매틱스 단말기(STS)와 전후방 2채널 블랙박스가 장착돼 속도, 조향, 브레이크, 가속도 등 100개 이상의 차량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로 흘러들어간다.
하루 누적 주행거리만 110만km. 전국 도로 총연장 11만km의 10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24시간 365일 쉼 없이 달리며 데이터가 쌓이는 구조다.
그 가운데에는 사고 데이터까지 있다. 실제로 쏘카는 카셰어링 사업 특성상 연간 4만건 이상의 실제 사고 영상과 차량의 미세한 움직임을 담은 에고모션(Egomotion) 데이터가 적재되고 있다. 누적 22만건, 8.8테라바이트(TB) 규모다. 시뮬레이션으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실제 위험 상황 데이터라는 점에서 자율주행 AI 개발에서 가장 확보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꼽힌다는 설명이다.
장혁 쏘카 미래이동TF장은 지난 14일 성수 사무실에서 열린 1분기 성과공유 행사에서 "기존 자율주행이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입력하는 룰베이스와 고정밀 지도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입력하면 거대 AI 모델이 스스로 주행을 판단하는 엔드투엔드(E2E)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모델 아키텍처가 상향 평준화되면서 기술 완성도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양질의 데이터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장 TF장은 "대규모 플릿(차량단), 차량 데이터 수집 기능, 중앙집중형 데이터 파이프라인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사업자는 전 세계적으로 테슬라와 쏘카가 유일하다"면서 "국내에서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춘 사업자는 쏘카가 유일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완성차 제조사(OEM)는 중앙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부족하고,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데이터 규모에 한계가 뚜렷하며, 택시 호출 플랫폼은 수집 기능이 미터기 수준에 그친다는 비교까지 곁들였다.
실제로 쏘카는 수집된 원본(Raw) 데이터를 학습용 데이터셋으로 전환하는 3단계 가공 파이프라인도 구축한 상태다. 번호판과 얼굴 정보를 지우는 익명화, 블랙박스 영상과 텔레매틱스 데이터의 시간을 일치시키는 타임 싱크, 비전-언어 모델(VLM) 기반으로 주행 상황을 자동 분류하는 태깅 단계를 거쳐 학습용 데이터가 완성된다.
이를 FSD로 대표되는 테슬라식 데이터 처리 흐름의 쏘카식 해석으로 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카셰어링으로 축적된 방대한 모빌리티 데이터를 파이프 라인 전략으로 정제한 후 원하는 방식대로 그 흐름을 조절한다면 그 가능성의 한 줄기 중 테슬라의 FSD도 충분히 가능하다. 당연히 바꿔 말한다면 쏘카의 전략은 카셰어링을 넘어 FSD까지 포함한 두터운 모빌리티 잠재력으로 채워지는 셈이다.
그 가능성의 한 단면을 쏘카의 구독으로 체감한 것이 바로 27일의 서울숲이 아닐까. 자율주행의 신선함을 넘어서는 상상력의 단면이다.
자율주행 모드. 사진=최진홍 기자
골든타임
쏘카는 자율주행 사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에 조바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당장 글로벌 로보택시 시장은 폭발적 성장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로보택시 서비스 시장 규모가 2035년까지 약 1680억달러, 한화 약 240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6년이 특히 분기점으로 거론된다. 그동안 제한된 지역에서 진행되던 파일럿 테스트가 대규모 상용화로 전환되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구글 웨이모와 중국 바이두가 이미 무인 서비스를 상용화했고, 미국과 중국의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장 TF장은 "앞으로 3년이 한국이 자율주행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면서 "이 기간 내에 쏘카가 국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위기감은 쏘카 창업주 이재웅 최고운영책임자(COO)의 6년 만의 경영 복귀와도 맞물린다. 이 COO는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돼 의장 겸 COO로 복귀했다. 이 COO가 조직 전반과 카셰어링 분야를 맡고, 박재욱 대표는 미래 신사업에 주력하는 분업 구도가 자리를 잡았다. 박 대표 직속으로 신설된 미래이동TF가 자율주행 신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쏘카는 여세를 몰아 데이터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 투자도 가세했다. 라이다(LiDAR)와 카메라 7대, GPS·관성측정장치(IMU)를 탑재한 풀 센서킷 차량 1대를 서울숲과 본사 일대에서 시험 운행 중이다. 향후 최대 1000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고해상도 멀티모달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쏘카 측은 "센서가 달린 차량은 외관이 일반 쏘카와 달라 이용자에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 요금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험차 중심의 전통적 데이터 수집 구조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이 쏘카식 전략의 차별 포인트로 거론된다.
나아가 쏘카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향해 두 갈래의 전략을 그리고 있다.
1600만 회원을 대상으로 한 레벨2 플러스에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카셰어링·구독 서비스가 한 축이고, 타다의 운영 노하우를 녹여낸 레벨4 자율주행 택시 호출 사업이 다른 한 축이다. 미국이 웨이모, 중국이 바이두 아폴로로 대표되듯 한국에서는 쏘카가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1위 사업자로 자리 잡겠다는 그림이다.
이정행 미래이동TF 기술총괄은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는 평이한 주행이 아닌,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인 엣지 케이스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기술 성숙에 최소 1~2년이 더 필요하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5년 안에는 소비자가 일상에서 쏘카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직접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자율주행 차량 제어 기술 개발은 자체 역량 강화와 함께 파트너십, 인수합병(M&A)까지 다방면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쏘카 관계자는 "한국의 도로 주행 데이터를 쏘카보다 많이 갖고 있는 곳은 없기 때문에 테슬라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을 지향하는 모든 회사에 쏘카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쏘카는 자체 자율주행 역량을 보다 고도화해 모든 공유차량 이용자가 자율주행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국책과제에도 발을 들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주관하는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의 '자율주행 레벨4/4+ 공유차 서비스 기술 개발' 과제에 컨소시엄으로 참여 중이다. 이용자가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차량이 자율주행으로 이용자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고, 이용이 끝나면 스스로 반납 장소나 차고지로 이동하는 모델이다. 화성시 자율주행 리빙랩에서 토레스EVX를 활용한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인력 의존도가 높은 렌터카 산업의 차량 재배치 문제를 자율주행 기술로 풀어낸다는 시도다.
사진=갈무리
사실 성수 도심을 30분간 누빈 모델S에서 내리며 떠오른 건 한 장면이었다. 바로 차량이 사고 영상을 매일 4만건씩 학습하고, 그 학습 결과를 다시 도로로 내보내며 진화하는 장면. 이용자는 비싼 돈을 내고 첨단 차량을 빌리지만 동시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일종의 학습 파트너이기도 하다.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만들어낸 이 선순환 구조를 쏘카는 한국 도로 위에서 다시 짜고 있는 셈이다.
물론 넘어야 할 난관도 많다. 자체 자율주행 모델 개발에는 천문학적 자금과 시간이 들어가는 데다, 글로벌 빅테크와 완성차 진영의 기술 격차를 데이터만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 도로 데이터의 양은 분명한 강점이지만 데이터를 받아 학습시킬 자체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까지 갖춰야 비로소 완결된 구조가 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쏘카가 그리는 비전은 한국 모빌리티 산업이 자율주행 시대에 데이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평가다. 장 TF장은 "AI 모델의 출처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주권"이라면서 "쏘카의 자율주행 데이터 플랫폼이 국내 모빌리티 생태계 자생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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