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빅테크, 실적 호조에도 'AI 올인' 위해 과감한 선제 감원·재배치
국내 기업 '실적 개선' 과실 두고 갈등…삼성전자 노조 총파업·조선업계 확산
시스코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빅테크 업계가 인공지능(AI) 중심의 체질 개선을 위해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재배치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실적 개선에 따른 성과급 지급 기준을 둘러싸고 극심한 노사 갈등과 파업 위기에 직면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빅테크, 실적 호조에도 'AI 올인' 위해 과감한 감원·재배치
13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는 AI 사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이번 분기 중 전체 직원의 5% 미만 규모인 4000명 미만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다. 해고 통보는 14일부터 시작된다.
이번 구조조정은 경영 악화로 인한 비용 절감 목적이 아니다. 시스코는 지난 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2% 증가한 158억 4000만 달러(약 23조 6159억 원)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으며,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하이퍼스케일러)들로부터의 AI 인프라 주문 폭주로 연간 매출 전망치도 상향 조정한 상태다.
척 로빈스 시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필요한 자원이 적재적소에 충분히 배치되어 있지 않다"며 "이번 조정은 비용 절감보다는 실리콘, 광학, 보안, AI 분야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인력 재배치"라고 강조했다. 시스코는 이번 구조조정에 퇴직금 등 최대 10억 달러(약 1조 4911억 원)의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시스코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 빅테크 업계에서는 AI 투자 확대를 위한 선제적 감원 흐름이 뚜렷하다.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이 지난 3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인력을 감축했고, 아마존 역시 지난 1월 사무직 직원 1만 6000명을 해고하며 전사적 역량을 AI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성과급 도미노' 몸살
반면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실적 개선의 과실을 나누는 방식을 두고 노사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미래를 향한 동력이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은 사측의 지속적인 대화 제안에도 불구하고 오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의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노조는 그동안 요구해 온 초과이익성과급(OPI)의 투명화, 상한 폐지, 제도화에 대해 사측의 입장 변화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 영업이익의 10%와 경제적부가가치(EVA)의 20% 중 선택하는 투명화 방안을 제시하고, 상한이 없는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등 유연한 제도화 방안을 거듭 제안하며 "조건 없이 만나 대화하자"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노조는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최승호 노조 위원장은 사측의 제안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6월 7일 이후에나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물밑 대화 가능성마저 희박해진 상태다.
이러한 '성과급 갈등'은 반도체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번지는 '성과급 도미노' 현상으로 심화되고 있다. 최근 실적 개선세가 뚜렷한 조선업계가 대표적이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구체적인 비율을 명시한 요구안을 내걸 계획이다. 이를 지난해 영업이익(약 2조 원)에 적용하면 성과급 재원만 약 6000억 원에 달하며, 조합원 1인당 약 7500만 원 수준이다. 동종 업계인 한화오션 역시 원·하청 노동자 간 성과급 지급 기준과 범위를 두고 사측의 고심과 부담이 커지는 등 성과급을 둘러싼 진통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1조 원이 넘는 일회성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AI 중심으로 인력을 전면 재배치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과감한 행보는, 실적 반등의 시점에서 당장의 보상 규모와 산정 방식을 두고 대립 중인 한국 기업 노사의 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AI 무한 경쟁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내부 갈등에 매몰될 경우, 미래 기술 경쟁력 확보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자현 기자 jahyeon659@gmail.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