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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인물탐구(24)] LG그룹 구광모 회장③ 경영 철학 - 변곡점에서... ‘깊이’와 ‘확장’을 동시에 설계하다
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입력 : 2026.04.10 00:30
ㅣ 수정 : 2026.04.10 00:30
[기사요약]
‘깊이’를 통해 ‘확장’하는 전략 구조 정착
버림과 선택으로 미래 성장 기반 확립
고객가치 중심으로 모든 전략 재정렬
한국은 강소대국이다. 2025년 기준 인구는 5100만여 명이지만, 세계 GDP 12위에 올라 있다. 반도체·조선·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에서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탁월한 CEO와 창업자들이 인구와 자원의 한계를 넘어 성장을 견인해 왔다. 뉴스투데이는 연중 심층기획 ‘신(新)인물탐구’를 통해 이들에 대한 경영학적 사례 분석을 시도한다. 본 기획은 다음 7가지 분석 축으로 인물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성장 경력: 경영 수업형 vs 외부 성취형 >> ② 경영 성과: 재무 성과 vs 구조 성과 >>
③ 경영 철학: 한우물 파기 vs 다각화
>> ④ 리더십 스타일: 지배형 vs 소통형 >> ⑤ 용인술(인재 철학): 성과 중심 vs 신뢰 중심 >> ⑥ 기업 문화: 조직 논리 vs 자율 문화 >> ⑦ 리스크 관리: 예방형 vs 복구형
[뉴스투데이=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2019년 이후 구광모의 신년사는 일관된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고객’ 그리고 그 고객에게 닿는 ‘핵심 가치’였다.
그러나 2026년 신년사에서 드러난 표현은 이전과 결이 달랐다. 고객 중심을 넘어 “하나의 핵심 가치를 선택하고,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들라”는 보다 단단한 주문이 제시되었다.
이 변화는 메시지의 수사적(修辭的) 강화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의 전환을 드러내는 신호였다.
• “하나의 가치에 깊이 파고들다”.. 선택과 집중의 재해석
이 문장은 매우 분명한 방향성을 내포한다. 이는 고전적 의미의 ‘한 우물 파기’가 아니라, 핵심 가치 기반의 초집중 전략이다.
기존의 한 우물 전략이 특정 산업이나 제품군에 대한 집중을 의미했다면, 구광모가 제시한 방향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추상화된 개념이다. 즉, 산업이 아니라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를 중심으로 우물을 정의하고, 그 가치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이다.
구광모의 메시지는 확장의 단계 이전,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이는 제품도, 시장도 아닌 ‘가치’를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는 접근이다.
이러한 철학은 선언적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실제로 LG는 2018년 이후 과감한 포트폴리오 재편을 단행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편에서 언급했던 스마트폰 사업 철수다.
이는 사업 정리가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가져갈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의 결과였다. 대신 LG는 배터리, 자동차 전장, OLED와 같은 영역에 자원을 집중했다.
이 선택은 “모든 것을 일정 수준 이상 잘하는 기업”에서 “특정 영역에서 압도적 차별성을 만드는 기업”으로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했다.
구광모의 ‘한 우물’은 산업 단위가 아니라 가치 단위에서 정의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제품, 기술, 서비스, 조직 역량이 결합된 총체적 경험으로 구현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LG의 전략은 “어디에 진출할 것인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고객에게 기억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다. 겉으로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전략의 기준점을 산업에서 가치로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LG의 변화는 사업 재편이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의 재정의로 읽힌다.
• ‘깊이’ 위에 세운 ‘확장’
여기서 눈여겨볼 사항은, 이처럼 ‘깊이’를 강조하는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LG가 동시에 매우 공격적인 확장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선택과 집중은 확장과 상충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구광모의 LG에서는 이 두 축이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전제 조건으로 삼으며 동시에 작동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이 시리즈 지난 ‘경영 성과’ 편에서 소개했던) AI, 바이오, 클린테크로 대표되는 ‘ABC 전략’이다. LG는 향후 5년간 약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면서, 그 절반 이상을 이 세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그룹의 미래 정체성을 재설계하는 수준의 결정이다.
AI는 LG에 하나의 독립 사업이 아니라, 전자·통신·제조 전반을 관통하는 플랫폼 기술이다. 스마트가전,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등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AI는 기능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요소로 작동한다. 즉, AI는 새로운 산업이라기보다 기존 사업의 경쟁 방식을 재정의하는 ‘운영체계’라 할 수 있다.
LG는 AI 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집중하며 AI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구광모는 2024년 6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AI 반도체 설계업체인 ‘텐스토렌트(Tenstorrent)’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Figure AI)’를 방문했다.
그는 반도체 설계부터 로봇 등 다른 분야에 이르기까지 AI 밸류체인 전반을 세심하게 보면서 LG의 AI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AI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살폈다. 이는 AI가 향후 모든 산업에 혁신을 촉발하며, 사업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구광모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행보다.
구광모 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반도체 설계업체 ‘텐스토렌트’의 CEO ‘짐 켈러(Jim Keller)’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LG]
바이오는 화학과 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LG화학이 축적해온 분자 설계, 소재 개발, 공정 기술은 바이오 의약품과 헬스케어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이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약이라기보다, 기존 역량을 보다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다.
구광모는 지난 2025년 신년사에서 “난치병을 치료하는 혁신 신약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다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미래에 도전할 것”이라며, 미래성장동력 가운데 하나인 바이오 사업 육성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클린테크 역시 마찬가지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 재생에너지 소재 등은 이미 LG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사업은 제품 사업을 넘어, 전기차·에너지·인프라를 아우르는 생태계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광모는 2025년 6월 인도네시아를 찾아 배터리 사업 육성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글로벌 잠재시장에서의 미래 성장기회를 모색했다.
그는 “현재의 격화되고 있는 경쟁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5년 뒤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전략 마련에 힘써 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LG는 전자와 화학이라는 기존 핵심을 유지하면서, AI·바이오·클린테크라는 미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을 연결하는 공통의 축은 기술 기반과 고객가치다.
AI가 적용된 가전, 바이오 기반 헬스케어,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은 모두 “고객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LG의 확장은 기술 중심이면서 동시에 고객 중심이다.
이처럼 구광모의 전략은 깊이와 확장이 대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깊이가 확장의 조건이 되고, 확장이 다시 깊이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다. 그리고 바로 이 구조 속에서 LG는 전통적 재벌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
• 위기 속에서 더 선명해진 철학, 리밸런싱의 본질
이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시점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였다. 이 시기는 LG에 경기 변동의 국면이 아니라, 사업구조 전반의 유효성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압축된 위기의 시간이었다.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전기차 시장은 이른바 ‘캐즘’ 구간에 진입하며 배터리 수요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었다. 디스플레이 산업 역시 LCD에서 OLED로의 전환 과정에서 비용 부담과 수익성 압박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LG는 2024년 그룹 전체 기준 순손실을 기록하며, 수익 구조의 취약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시기 LG가 마주한 질문은 명확했다. “성장을 계속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였다. 즉, 전략의 초점이 확장에서 생존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때 구광모는 비교적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선택은 두 갈래로 나뉘었지만, 그 본질은 하나였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
첫 번째는 비핵심 사업의 정리였다. LG화학의 일부 사업 구조조정 가능성이 거론되었고, 에스테틱 사업부 매각이 검토되었으며, 북미 시장 중심의 사업 리밸런싱도 진행되었다.
이는 비용 절감이나 재무 개선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그룹 전체 자원의 배분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였다.
두 번째는 핵심 영역에 대한 집중 강화였다. 배터리 투자는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고, AI 연구 조직은 오히려 확대되었으며, 전장 사업 역시 전략적 우선순위를 유지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사업과 AI 분야는 미래 성장의 축으로 재확인되었다. 이는 단기 수익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구광모의 LG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가볍게 만들면서도, 미래 투자를 통해 무게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단순히 위기 대응이 아니라, 위기를 활용해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리밸런싱은 LG에 일종의 ‘선별의 시간’이었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무엇에 더 깊이 들어갈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동시에 내려진 시기였다. 그리고 그 답은 일관되게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고객가치로 이어지는 핵심 영역에는 더 깊이, 그 외의 영역에는 더 냉정하게.
이처럼 위기는 구광모의 경영 철학을 시험하는 동시에,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LG는 위기를 버텨낸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있었다.
구광모 회장이 지난 4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스킬드 AI(Skild AI)’ 공동 창업자 아비나브 굽타(Abhinav Gupta)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출처=LG]
• 깊이와 확장의 균형, 그리고 조용한 혁신
구광모의 경영 철학은 “한 우물을 파느냐, 다각화를 하느냐”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해체하고, 그 위에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그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정교하게 정렬되어 있다.
그의 전략은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무엇을 깊게 팔 것인가를 정의한다. 이때의 ‘깊이’는 특정 산업이나 제품이 아니라 고객에게 전달되는 핵심 가치다. 다음으로, 그 가치에 대한 깊이를 기반으로 확장을 설계한다. 즉, 확장은 별도의 선택이 아니라 깊이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선택을 고객가치라는 단일 기준 위에서 정렬한다. 이 세 단계는 독립적인 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사고 체계다.
그래서 구광모의 다각화는 외형 확장이 아니라 핵심 역량의 확장,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 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 점에서 그의 전략은 다각화라기보다 ‘재배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기존 전자와 화학에서 축적된 기술과 조직 역량을 기반으로, AI·바이오·클린테크와 같은 미래 산업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작업이다.
또한, 그의 ‘한 우물’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산업 집중과는 다르다. 그것은 특정 사업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요한 탐구다.
이 질문은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강력한 기준이 된다. 산업은 변하고 기술은 진화하지만,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라는 기준은 그 모든 변화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전략의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방향성을 잃지 않게 만든다. 특정 산업에 고정된 전략은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 있지만, 가치에 기반한 전략은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광모의 전략은 ‘깊이’와 ‘확장’을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이나 극적인 구조 전환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조정, 투자 방향 설정, 조직 개편과 같은 일련의 선택들이 축적되며 전체 전략이 형성된다. 겉으로 보면 점진적 변화처럼 보이지만, 그 축적의 결과는 기업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수준에 이른다.
구광모의 LG는 지금 하나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깊이를 통해 확장을 설계하고, 확장을 통해 다시 깊이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실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객가치라는 기준이 놓여 있다.
이 실험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산업 환경은 계속 변하고, 기술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LG가 선택한 이 전략이 대응이 아닌 하나의 철학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
그 방향 위에서 LG는 지금, 과거의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 전략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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