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에서 이뤄낸 고귀한 문화보국
기와집 열다섯 채로 지켜낸 조선백자
소유를 넘어선 수장가의 숭고한 결단
간송미술관은 4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봄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을 개최한다.
예술품의 진가는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기물이 품은 미학적 성취와 희소성 그리고 그 위에 시대가 덧입힌 서사가 정교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시장의 호가를 가뿐히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가 탄생한다.
올해는 간송 전형필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간송미술관은 4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봄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을 개최한다. 2024년 재개관 이후 이어온 3개년 기획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번 전시에는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비롯해 조선 회화·백자·추사 김정희 및 추사학파의 서화 등 간송 컬렉션의 정수만을 엄선한 총 36건 46점이 공개돼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의 무대는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설립한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소 경성미술구락부다. 겉으로는 거래 기관을 자처했으나 실상은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는 주요 통로였다. 낙찰 총액이 1935년 12만 5000 엔에서 1941년 37만 5000 엔으로 3배 가까이 급증할 만큼 문화재 유출이 가속화되던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인의 입장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간송 전형필은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간송 컬렉션의 의의를 짚어낸다. "문화라는 것은 한 지역에 고립되고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과 같아서 어느 쪽으로든 흐르고 섞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죠. 간송 컬렉션은 언젠가 반드시 조국이 광복을 맞이할 것이라는 굳건한 신념 아래 탄생했습니다."
간송의 수집은 심미적 소유욕이 아니라 다가올 해방 이후의 학문적 뼈대를 세우는 치밀한 투쟁이었던 셈이다. 전시는 이렇듯 복잡다단한 시대상 속에서 간송이 전개한 방대한 수집 궤적을 한 편의 입체적인 서사로 엮어 보여준다. 그의 행보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 일제의 위협에 맞서 조선 미술사의 통사적 맥락을 사수하려는 거시적 투쟁이었다.
심사정과 강세황의 합작인 <표현연화첩>이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들의 소장을 거쳐 1943년 마침내 간송의 품으로 돌아온 일화가 이를 증명한다. 더불어 1920년대 후반 고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간파해 최고급 조선백자를 지켜낸 예리한 안목, 1930년 흥선대원군의 <석파묵란첩> 입수를 시작으로 당대 최고가 학문적 자산이었던 추사 및 추사학파의 계보를 온전히 구축해 낸 철학은 깊은 울림을 준다. 나아가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유산들을 대한고미술협회를 통해 다시 사들인 재입수의 집념까지 이 모든 과정이 문화보국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명작이 즐비한 전시장 내에서도 유독 시선을 끈 3점의 기물과 글씨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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