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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대 아픔' 춤 승화 여사제(女司祭)적 춤꾼 이애주(李愛珠) '5주기 공연...

1) 지난 2021년 5월 10일 '시대의 춤꾼', '민족춤꾼'으로 국가무형유산 승무(僧舞) 보유자였던 이애주(李愛珠) 선생(사진 1,2)이 74세로 작고했다. 한국 전통춤의 맥을 지키면서도, 1980년대 민주화의 열망과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껴안았던 대표적인 춤꾼이었다.

'시대 아픔' 춤 승화 여사제(女司祭)적 춤꾼 이애주(李愛珠) '5주기 공연...

1) 지난 2021년 5월 10일 '시대의 춤꾼', '민족춤꾼'으로 국가무형유산 승무(僧舞) 보유자였던 이애주(李愛珠) 선생(사진 1,2)이 74세로 작고했다. 한국 전통춤의 맥을 지키면서도, 1980년대 민주화의 열망과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껴안았던  대표적인 춤꾼이었다. 1970년대 대학가 민중문화운동의 첫 세대인 그는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면서 서울에서 출생했고, 7살 때부터 김보남에게 춤을 배웠다. 1969년에는 '한국 춤의 대모(代母)' 한영숙(사진 3)의 제자가 되어 승무, 태평무, 살풀이를 본격적으로 익혔고, 서울대 체육교육과와 대학원을 거쳐 국문과에도 편입해 공부를 이어갔다.

1996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가 되었고, 같은 해부터 서울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불세출의 명무(名舞) 이애주의 춤은 승무에서 출발해, 몸의 절제와 내면의 힘을 함께 드러내는 점이 특징이었다. 전통춤의 형식을 지키면서도 탈춤, 민요, 벽화 속 동작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춤 세계를 확장했다. 특히 민주화 운동 시기에는 ‘시국춤’과 ‘진혼춤’ 같은 형태로 시대의 고통과 위로를 몸짓으로 표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춤을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인간성 회복과 생명 존중, 역사적 기억을 드러내는 실천으로 여겼다.

이애주는 전통의 계승자이면서 동시에 시대와 호흡한 예술가였다. 전통춤의 정통성을 지키는 한편, 거리와 광장, 캠퍼스에서 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애주는 흔히 '명무(名舞)'이자 '시대의 춤꾼'으로 불린다. 이애주가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춘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저항, 진혼, 위로, 연대의 언어였다. 그는 거리와 대학 캠퍼스, 장례식장 같은 현장에서 춤을 통해 국가 폭력의 상처를 드러내고,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며,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다. 1987년 6월항쟁 때의 <바람맞이>와 <썽풀이춤>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몸으로 형상화한 춤이었고, 생명과 인간성 회복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6월 항쟁에서 희생한 이한열 열사의 노제(路祭)에서 춘 진혼의 춤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상처를 애도하는 최고의 무언극이 되었다. 그래서 이애주의 춤은 “말로 못한 시대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자,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버티게 하는 정치적·윤리적 행위로 읽혔다.

이애주의 시국춤은 전통춤의 문법을 바탕으로 하지만, 현장의 긴장과 비탄을 품어 훨씬 직접적인 힘을 가졌다. 특히 맨발, 흰옷, 절제된 동작, 땅에 엎드렸다가 일어서는 몸짓 같은 요소는 억눌린 현실과 다시 일어서는 의지를 함께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그의 춤은 전통예술이 시대와 분리되지 않고 역사에 응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이애주의 민주화 현장 춤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기억을 남기며 변화를 촉구하는 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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