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와 인터뷰
태권도가 스포츠윤리센터의 최근 3개년 종목별 상담, 신고, 처리 건수에서 1~2위를 기록했다. /AI 생성 이미지
스포츠는 공정과 노력, 존중의 가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묵인돼 온 폭력과 비리, 침묵의 구조가 자리했다. 성적 지상주의와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문제 제기는 곧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장을 지배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선수의 진로를 좌우하고, 조직을 떠나는 순간 경력이 끝날 수 있다는 공포는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한국스포츠경제는 연중기획으로 특정 개인이나 종목의 일탈을 넘어 한국 스포츠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돼 온 문화는 무엇이었는지, 왜 침묵이 이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질문하고자 한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 스포츠를 위한 성찰과 변화를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서울=한스경제 신희재 기자 |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권도로 한다.' 2018년 3월 제정된 이 법안은 국내에서 태권도가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 무예인 태권도는 오늘날 전 세계 215개국에 보급돼 2억 명 이상이 수련하는 글로벌 스포츠로 성장했다. 국내에도 2026년 2월 기준 국기원에 등록된 9334개의 도장이 전국 각지에 고루 분포돼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성공적인 외연 확장의 이면에는 낙제점에 가까운 내부 문제 관리가 공존했다. 태권도는 지난달 본지가 입수한 스포츠윤리센터의 최근 3개년(2023~2025년) 종목별 상담, 신고, 처리 건수에서 각각 2위, 1위, 2위를 기록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인권침해(성폭력, 폭행), 비리(횡령, 배임, 승부조작) 등 두 가지 대분류로 사건을 접수한다. 태권도는 이 분야에서 축구, 야구와 같은 인기 종목과 함께 상위권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스포츠윤리센터의 자료를 확인한 후 '이 정도였나' 싶어 놀랐다"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혀 몰랐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다양한 단체의 공정위원회에서 여러 사건을 살펴본 경험이 있다. 스포츠 종목 단체들이 각각 유형의 차이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곪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태권도 지도자들이 공부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사회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 갖춰야
정병기 교수는 태권도의 구조적 문제를 되짚으면서 먼저 지도자 육성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포츠윤리센터와 국기원에서 태권도 자격증을 심사하는 강사진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췄는지 돌아봐야 한다. 국기원은 강사를 모두 '교수'라 부른다. 그런데 이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교수'와 차이가 있다"며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교수라는 명칭을 쓰려면 그에 걸맞은 연구자들로 강사진을 꾸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기원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일부 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기원은 3급 국제태권도사범 응시생을 대상으로 태권도 의식예절, 태권도 역사, 태권도 운동역학, 용어 및 기본동작, 심사론, 심판론, 태권도 응급처치, 기본 교육론, 성장발달론 등 총 9개 과목을 온라인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정병기 교수는 "태권도 사범은 4단 이상을 받은 만큼 실기 교육보다는 성인지 감수성과 인문학, 법 제도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양을 배울 수 있게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또 성·인권·윤리에 대한 보수 교육이 매년 실시돼야 한다"며 "지도 철학이 확고한 지도자들조차도 처음엔 여러 실수를 저지른다. 실기 위주로만 자격증을 발급하면 아동·성인·노인 등 수강생에 따라 다른 교육을 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어린 학생들이 태권도장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태권도계 자성 촉구 계기 되길
태권도계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독립적인 신고 센터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정병기 교수는 "제도권에서 자유로운 분들과 법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 운영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려면 태권도계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며 "물론 재원과 인적 자원을 투입해서 독립적인 신고 체계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타 종목의 공정위원회에 참가하면서 피해자 보호가 아닌 지도자 보호가 우선이 되는 사례를 여럿 봤다. 태권도계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경고했다.
아울러 "신고 센터가 어렵다면 스포츠윤리센터 신고 연락처가 적힌 포스터를 도장에 부착하는 걸 의무화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전국에 있는 태권도장은 물론 초중고대학교와 실업팀에 포스터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지도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기관과 협력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병기 교수는 "태권도의 문제점이 밝혀지는 게 오히려 한 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곪아 있던 문제가 나타났을 때 증상을 치료하고 수술해야 한다"며 "저 또한 결점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한다. (스포츠윤리센터의 지표가) 태권도계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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