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탈락한 축구대표팀이 이번에는 국회에 섰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청문회 증인석에 앉았고, 의원들은 감독 선임 과정과 협회 운영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평가받아야 할 축구가 국회에서 감독 선임의 정당성을 해명하는 모습은 지금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은 32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48개국이 참가하고 조 3위 일부에게도 다음 단계 진출 기회가 주어진 대회였기에 실망은 더욱 컸다. 그러나 이번 실패를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들의 경기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감독 선임, 협회 운영, 세대교체, 선수 육성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회가 축구협회를 상대로 청문회를 여는 것은 적절한가. 대한축구협회는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 스포츠 단체이며, 국제축구연맹(FIFA)도 각국 협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국회가 전술과 선수 기용을 평가하거나 특정 감독의 선임과 해임에 영향을 미친다면 스포츠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축구는 정치가 대신 운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를 단순히 정치권의 축구 개입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국민체육진흥기금과 스포츠토토 지원금 등 공적 재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예산 집행과 조직 운영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점검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정당한 책무다. 감독 선임이나 예산 집행 과정에서 규정 위반 또는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면 그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국회가 살펴야 할 대상은 경기 결과나 전술이 아니라 공적 자금의 집행, 의사결정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권한이 특정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았는지 여부다.
청문회가 고성과 망신주기, 짧은 영상으로 소비될 장면만 남긴다면 국민의 분노를 잠시 대신 표출하는 정치적 이벤트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축구협회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협회가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운영됐다면 과연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겠는가. 감독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고 왜 최종 후보를 선택했는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방어와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협회가 스스로 무너뜨린 신뢰의 빈자리를 정치권이 차지한 셈이다. 협회가 말하는 자율성은 무능과 폐쇄성을 감추는 방패가 아니다. 자율성은 투명한 절차와 책임 있는 행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
현재 협회는 정몽규 전 회장의 사퇴 이후 이용수 부회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임시체제로는 조직의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개혁을 이끌기 어렵다. 차기 회장 선거에서는 선거인단 구성과 후보자의 공약 및 이해관계, 선거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개인의 명망이나 재정적 능력보다 축구 행정의 전문성과 도덕성, 조직 운영 능력을 검증해야 하며, 회장에게 집중된 권한 역시 이사회와 기술위원회 등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의 개혁은 협회장이나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령별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일관된 축구 철학을 구축하고, 진학과 성적 중심의 유소년 축구를 선수의 성장과 잠재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K리그에서는 젊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확대하고 선수 육성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학교축구, 대학축구, 하부리그, 그리고 K리그가 하나의 성장 경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다음 월드컵에서도 우리는 해외파의 개인 능력과 ‘경우의 수’에 기대는 축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축구를 장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축구협회 역시 자율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능과 불투명한 행정을 반복해서도 안 된다. 국회는 법과 공적 재정의 범위 안에서 감시하고, 축구의 전문적 판단은 축구계가 책임져야 한다. 축구협회는 정치권의 개입을 비판하기에 앞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행정 능력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이번 청문회가 남겨야 할 것은 몇 사람의 사과와 사퇴가 아니다. 투명한 협회 운영, 공정한 감독 선임,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경쟁력 있는 프로리그로 이어지는 구조적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 축구가 다시 국회에 불려 가지 않는 방법은 분명하다. 정치가 축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인이 축구를 제대로 운영하고 그 결정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는 출발점이다.
황규영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