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새겨놓은 언어, 당신은 읽을 수 있나요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숲문해력- 남효창 지음
2026년 10월 01일(목) 19:20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을 문해력이라 한다. 구체적으로 문장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읽어내는 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문해력은 책을 통해 길러진다.
숲을 읽어내는 힘, 다시 말해 숲을 통해 세계를 읽는 힘은 ‘숲문해력’이라 할 수 있다. 숲은 단순히 각각의 개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숲에는 다양한 존재들의 관계망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숲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연구자인 남효창 박사는 숲을 읽는 감각을 ‘숲문해력’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존재를 넘어 관계를 읽고, 하나의 사건을 넘어 흐름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넘어 시간을 읽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빛과 바람, 향기가 모여 만든 하나의 흐름. 생명은 그 조용한 호흡 속에서 자신의 계절을 읽어낸다.
서울대 임업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한 남 박사가 펴낸 ‘숲문해력’은 인간이 숲을 어떻게 읽고 바라볼 것인지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40년 간 숲을 모티브로 숲의 인문학과 숲교육을 설파해왔다. 지난 2002년부터 숲연구소를 이끌어왔으며, 숲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이 기본적인 글의 구성 요소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듯, 숲문해력도 그것과 유사하다.
저자는 숲을 하나의 텍스트로 본다. 이때 숲의 ‘종’은 글의 관점에서 단어이며, 상호작용이 빚어낸 ‘관계’는 문장, 문장이 모인 ‘서식지’는 문단,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루는 ‘거대한 서사’는 숲으로 상정된다. 결국 숲문해력은 숲이라는 유기체에서 종, 관계, 서식지, 거대한 서사를 읽어내는 힘을 말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남아 있는 눈비늘(아린)은 겨울의 흔적이고, 노란 꽃밥은 봄의 시작이다. 한 장면 안에서 두 계절이 만난다.
1부는 ‘감각’, 다시 말해 변화를 읽는 수단을 다룬다. 존재는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변화를 매개로 생명을 이어간다. 특히 4계절 가운데 봄은 변화를 가장 내밀하게 보여주는 시기이다. 잎눈이 부풀고 작은 풀 한포기가 몸을 일으키는 등 변화를 드러낸다. 물론 각각의 변화는 작고 사소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를 부르고 숲은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생명을 이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숲은 향기로 서로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눈보다 먼저 코가 알아차리는 것이다. 바람에 밀려 향기가 번지는데, 숲에서 향기는 생명들이 서로에게 발신하는 오랜 편지의 의미를 갖는다.
향기를 따라 접근한 벌과 나비는 꽃가루를 퍼뜨린다. 향기가 곤충을 이동시키고, 곤충의 이동은 숲의 계절을 불러온다.
나무는 향기로 대화를 나눈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향기가 발산된다. 주위 나무들이 신호를 받아 잎을 단단하게 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할 채비를 한다. 식물 가운데는 해충을 박멸시키는 곤충을 유인하는 향기를 발하는 개체도 있다. 겉으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숲의 내부에서는 이렇듯 무수히 많은 신호가 작동한다.
2부는 ‘흔적’에 관한 주제, 관계를 읽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흔적은 숲의 문장이다’라는 부분이다. 식흔, 산란흔, 이동흔, 채집흔, 거주흔, 포식흔, 분해흔에 대한 내용이 그것이다. 식흔은 먹고 먹히는 관계를 다루는데, 먹는 방식이 다르면 흔적 또한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다. 애벌레는 턱의 구조에 맞게 잎을 먹으며 딱정벌레는 조직을 갉아먹는다. 잎굴파리 유충은 특이한 습성이 있는데 잎 속을 파고 길을 남기는 행태가 그것이다.
마지막 3부의 주제는 ‘귀환’으로, 숲의 문해력을 우리 삶에 적용한다. 저자는 인간은 숲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을 잃었다고 본다. 숲을 읽는다는 것, 다시 말해 숲문해력의 본질은 대상을 바라보는 데서 더 나아가는 경험을 의미한다. 미세한 연결, 느린 시간까지 함께 읽는 일이라는 것이다. 늦기 전에 숲문해력을 되살리고 길러야 할 것 같다. <책이라는 신화>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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