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중국의 신좌파 사상가 왕후이는 저서 <탈정치화의 정치>를 통해 현대 정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로 탈정치화(Depoliticization)를 꼽았다. 그가 정의하는 탈정치화란 사회에서 정치 행위 자체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근본적인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내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실종되고, 그 자리를 법과 행정, 다수결 원칙 같은 제도적 기술만이 차갑게 작동하며 사회를 통제하는 기술관료적 지배 상태를 뜻한다.
왕후이는 탈정치화의 가장 뚜렷한 징후로 정당의 국가 기구화를 꼽는다. 정당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본래 기능을 잃고, 국가 권력을 관리하는 관료 조직처럼 변하는 현상이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당이 단순한 표 계산기나 권력 획득 도구로 전락할 때, 민주주의는 역동성을 잃고 식물국회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오늘날 한국 정치에 적용해 보면, 막강한 권력을 쥔 정부와 거대 여당이야말로 탈정치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다수 의석을 얻은 정당이 법안을 추진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 권한을 쓰는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배제할 때 문제가 생긴다. 법안 통과 건수만 성과로 과시하려는 입법 만능주의는 겉으로는 정당한 절차를 거친 듯 보이나, 실제로는 법의 이름으로 반대파를 억누르는 교묘한 도구로 변질되기 쉽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시키고 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이 바로 그 증거다.
여기서 모순은 대중 참여를 강조했던 왕후이 사상의 한계가 현대 한국 정치의 부작용과 닮았다는 점이다. 왕후이는 기계적 정치를 깨부수기 위해 대중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주의가 민주적인 견제와 균형 없이 흘러가면 권력 집중을 합리화하는 국가주의와 손잡게 된다. 대중은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주체가 아니라 권력을 맹목적으로 떠받치는 방패막이로 변질하고 만다.
실제 현실 정치에서 왕후이의 문제의식은 권력 집중을 막지 못한 채 국가 중심 논리와 결합하는 한계를 보였다. 대중의 참여가 민주적 제도의 통제를 벗어나 맹목적 신념과 만날 때, 민주주의를 혁신하기보다 권력을 비호하는 강력한 성벽이 되고 만다는 치명적인 모순이다.
이러한 경고는 오늘날 한국의 팬덤 정치에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들어맞는다. 거대 여당이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뭉친 강한 팬덤과 진영 논리에 기대어, 야당을 대화 상대가 아닌 청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행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상대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브레이크마저 고장 난 정치는 대중의 열정을 동원한 사적 권력 투쟁이자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을 제안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온건파는 문자폭탄의 표적이 되어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겨나고, 그 자리를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정치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입법과 국정운영이 아무리 평등과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워도, 대화와 타협 없이 기계적인 입법 독주와 행정력에 의존한다면 국민을 단순한 통제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민생 지원법 등 논쟁적인 법안들을 여야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일방통행은 명분의 정당성마저 퇴색시킨다. 자신들만이 정의롭다는 우월감에 취해 규칙을 바꾸고 상대를 청산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법치는 지배 수단으로 전락한다.
스스로를 절대 선(善)이라 믿는 오만은 정치를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는 전쟁터로 만들고, 국가 에너지를 진영 승리를 위해 탕진하게 만든다. 정치의 행정 기계화가 팬덤 정치와 결합할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은 채 실질적 숙의를 잃어버린다. 여야가 대화로 풀어야 할 정치적 갈등을 국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고소·고발하여 모든 현안을 사법부 판결에 맡겨버리는 현상이야말로 탈정치화의 정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내 학계의 실천적 지식인들 역시 일찍이 왕후이의 혜안을 빌려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이들은 정당이 사회적 조정 능력을 상실한 채 행정 기구화되고, 갈등 해결을 사법부 판단에 의존하는 정치의 사법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일 것이라 경고했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이들의 우려를 고스란히 현실로 증명한다. 협치와 합의라는 민주적 가치는 사문화된 지 오래며, 광장과 의회는 이성적 토론 대신 맹목적 적대감과 사법적 단죄의 칼날만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전락했다.
지금 한국 정치에 시급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입법 전쟁이 아니라 실종된 정치 본연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다. 거대 여당이 선택해야 할 길은 소수 야당을 지워버리는 독주가 아니라, 상대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화의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정치력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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