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대구의 정치가 뜨겁다. 2·28 기념공원을 비롯한 지역 곳곳에서 출사표가 던져지고, 거물급 인사들의 행보에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보수의 수성이냐, 새로운 인물의 약진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담론들은 가히 폭발적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사(修辭)와 정치적 역학 관계가 지면을 도배하는 사이, 정작 우리가 4년 동안 감내하고 누려야 할 ‘정책’은 선거판의 구색 맞추기용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럽다.
지방자치시대의 본질은 우리 동네의 삶을 바꾸는 데 있다. 그러나 그동안 대구 정치는 정책의 구체성보다는 정당의 깃발과 인물의 상징성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왔다. “누가 출마하느냐”는 질문은 무성하지만, “그가 내놓은 약속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질문은 늘 뒷전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장밋빛 공약에 취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빌 공(空)자’ 공약(公約)에 허탈해하는 과정을 수십 년간 반복해왔다.
이제 대구 시민들은 ‘심판’을 넘어 냉철한 ‘감정사(鑑定士)’가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약속 중에서 진술(眞述)과 가짜를 가려내는 기준은 단 하나, 바로 ‘실현 가능성’이다. 아무리 근사한 미래 비전이라도 구체적인 예산 확보 방안과 법적 근거, 그리고 추진 일정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희망 고문’일 뿐이다.
특히 대구의 현실은 엄중하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는 단순히 경제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구의 산업 생태계가 정체되어 있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방증한다. 신공항 건설,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산업 육성, 대구경북 행정통합 같은 거대 담론들이 선거판을 휩쓸고 있지만, 유권자인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거창한 프로젝트들이 중앙 정부의 예산안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한 정무적 전략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이 대구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교육 환경에 어떤 낙수효과를 줄 것인지를 말이다.
실현 가능한 공약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첫째,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둘째,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셋째, 재원 조달 방안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예산을 따오겠다”는 호언장담이 아니라, 국비와 시비의 매칭 비율, 민자 유치 가능성 등을 데이터로 제시하는 후보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또한 지방 의회와의 협치 능력이나 행정 경험 등 공약을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실행 근육’이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이란 방관이 아니다. 어느 쪽이 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정교한 설계도를 가져왔는지 치열하게 따져 묻는 것이 진정한 중립이자 깨어 있는 시민 정신이다. 후보자들 역시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정당 지지율에 기대어 승차하려는 안일함을 버려야 한다. 대구 시민은 이제 ‘당’을 보고 투표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내 아이의 교육과 내 부모의 복지,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도시의 생존 전략을 가장 잘 짜온 ‘일꾼’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대구가 ‘정치적 변방’이나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말들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서 시작된다. 투표는 단순히 한 명의 승자를 뽑는 행위가 아니라, 대구의 미래 4년에 대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엄중한 일이다. 계약서의 조항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 계약자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대구의 봄은 매번 찾아오지만, 대구의 미래는 우리가 질문할 때만 찾아온다. 이번 선거가 인물 경쟁을 넘어 정책 경쟁의 장으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화려한 출사표의 수사보다는 투박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실행 계획에 귀를 기울이자. 대구의 자존심은 투표용지 위의 정당 마크가 아니라, 시민의 안목에서 시작되는 정책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