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PAFC[제공=두산퓨얼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과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수소연료전지를 국가 차원의 핵심 인프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수소연료전지 산업 활성화를 통한 GX·AX 추진과 수출산업화’ 세미나에서는 수소연료전지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고사 위기에 처한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결단을 촉구하는 논의가 이어졌다.
발제에 나선 전문가들은 수소연료전지가 단순히 친환경 발전원을 넘어, AI 데이터센터(AIDC) 시대를 뒷받침할 최적의 전력 공급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3년 약 55GW에서 2030년 최대 298GW까지 5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상진 우석대 교수는 "수소연료전지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며, 설치 면적이 적고 도심형 분산 전원으로 활용하기 좋아 대규모 송전망 건설 없이도 데이터센터의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데이터센터 개발사의 47%가 연료전지를 가장 유력한 자체 발전 솔루션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이창현 단국대 교수는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인근 지역 난방에 활용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 극대화가 가능하다"며 연료전지가 단순한 보조 전원에서 '주전원'으로 격상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미 한국은 현재 발전용 연료전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인산형 연료전지(PAFC)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발전용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으며, 최근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SK에코플랜트는 미국 블룸에너지와 합작법인 '블룸SK퓨얼셀'을 설립해 현존하는 연료전지 중 효율이 가장 높은 SOFC 기술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며 데이터센터 전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수소차 '넥쏘'를 통해 검증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트램, 선박, 도심항공교통(UAM) 등 다양한 모빌리티로 확장하고 있으며,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으로의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최근 정부가 청정수소 발전시장(CHPS) 도입 과정에서 일반수소 입찰 물량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업계는 생존의 기로에 섰다.
김용채 한국수소연료전지산업협회 부회장은 "시장이 위축되면 기업의 투자가 멈추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로 이어지는 공급망이 붕괴된다"며 "미래 청정수소 시대가 왔을 때 기술과 인재가 없어 결국 외산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글로벌 연료전지 시장은 2026년 167억 달러에서 2034년 1,389억 달러(약 190조 원) 규모로 연평균 3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면서 경쟁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수소 굴기'를 내세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도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상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탄소 중립이라는 대전제 하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범수 기후부 수소경제기획과장은 현재 국내 연료전지 발전이 주로 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그레이수소' 기반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탄소 저감 효과와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타 발전 방식 대비 우월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장 청정수소로의 전환이 어려운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반수소 시장이라는 '마중물'을 없애는 것은 국가 전략 산업의 싹을 자르는 일"이라며, 예측 가능한 정책 설계와 최소한의 시장 기반 유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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