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엽 행정사사무소 명륜 대표행정사·한국수소산업협회 자문위원
울산은 대한민국 수소산업의 중심 도시다. 최근 울산시는 고체수소저장합금을 적용한 수소전기 굴착기 실증사업과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사업 등 미래 수소산업을 이끌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잇달아 유치했다. 수소도시 울산의 위상과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수소산업의 경쟁력은 국책과제를 얼마나 많이 유치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 주체들이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느냐가 진정한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울산시가 추진하는 수소전기 굴착기 실증사업과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사업에는 대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공공기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모두 사업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관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사단법인 가운데 유일하게 울산에 본부를 둔 한국수소산업협회가 정작 지역 핵심 수소사업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수소산업협회는 단순한 회원단체가 아니다. 수소기업을 연결하고 산업계의 의견을 모으며 국내외 기술협력을 이끄는 수소산업 전문 플랫폼이다. 산업 현장의 수요를 정책과 연결하고, 기업 간 협력을 촉진하는 가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협회는 지난 3월 중국 화북전력대학교와 고체수소 분야 기술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수소 생산과 저장·운송, 수소저장합금, 안전기술, 수소전력시스템 공동연구를 비롯해 기업 참여형 실증사업, 기술사업화, 전문인력 양성 등이 담겼다. 이는 단순한 학술교류를 넘어 국제 공동연구와 산업협력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성과가 별도의 행정 지원이 아니라 협회가 자체적으로 구축한 국제 네트워크와 산업계 협력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회원사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해외 협력 기반 확대를 위해 꾸준히 쌓아온 역량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수소전기 굴착기와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사업은 모두 지역 수소산업 생태계를 한 단계 확장하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산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와 보다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책 방향 아닐까. 협회가 요구하는 것은 사업의 주도권도, 예산도 아니다. 협회가 보유한 국제협력 경험과 기업 네트워크,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더해 달라는 것이다. 행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산업 현장의 수요를 연결하고, 국내외 협력 기회를 발굴하는 것은 협회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행정은 정책을 만들고 연구기관은 기술을 개발하며 기업은 시장을 개척한다. 협회는 그 사이에서 기업과 정책을 연결하고 산업 생태계를 조율한다. 이 네 축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수소산업 생태계가 완성된다.
세계 주요 수소 선도국들이 산업협회를 정책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수행하기보다 산업계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정책에 반영할 때 산업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은 세계적인 수소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는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역량을 넘어 지역의 산업 역량을 하나로 연결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울산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의 전국 단위 수소 전문 사단법인이 있다. 국내외 기업과 연구기관을 연결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울산만의 경쟁력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을 적극 활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가장 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울산 수소산업일 수 있다. 한국수소산업협회는 민주당 소속 송철호 시장 재임 시절 울산의 수소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치된 전국 단위 수소 전문 사단법인이다. 협회를 울산에 유치한 이유는 분명했다. 지역 기업과 행정,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수소산업의 구심점 역할을 맡기 위해서였다.
이제 새로운 시정이 출범했다. 민주당 소속 김상욱 시장 체제에서도 과거의 성과를 계승해 한국수소산업협회를 지역 수소산업의 실질적인 정책 파트너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협회가 가진 전문성과 국제 네트워크, 기업 중심의 현장 경험이 시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울산의 수소산업 경쟁력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수소도시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행정과 기업, 연구기관, 산업협회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될 때 비로소 세계적인 수소도시가 된다. 이제 울산이 설계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국책사업이 아니라 협력의 구조다. 그 구조가 탄탄할수록 울산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수소도시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김근엽 행정사사무소 명륜 대표행정사·한국수소산업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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