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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송시내의 초록지문(32)]트롤리 딜레마

큰아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때, 우리 가족은 좁은 골목을 끼고 조로록 자리 잡은 양옥집 2층에 살았다. 하루 종일 햇살이 쏟아져서 빨래가 잘 마르던 곳이었다. 지금은 철거 예정지구라 사람이 살지 않는 그곳에 조만간 진행될 식물 수업을 위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송시내의 초록지문(32)]트롤리 딜레마

▲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큰아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때, 우리 가족은 좁은 골목을 끼고 조로록 자리 잡은 양옥집 2층에 살았다. 하루 종일 햇살이 쏟아져서 빨래가 잘 마르던 곳이었다. 지금은 철거 예정지구라 사람이 살지 않는 그곳에 조만간 진행될 식물 수업을 위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구도심 변두리에 있는 동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이주가 끝난 집들에서 가져가지 않은 가재도구들이 방치되어 있어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러울 뿐. 밥을 먹기가 무섭게 대문 앞 공터나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동네의 아이로 자라던 시절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철거 예정이라는 띠지가 둘러친 대문이며 붉은 래커로 칠해놓은 담벼락 사이에 숨은 기억을 더듬어 옛집을 찾았다. 기우뚱하게 내려앉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스러진 플라스틱 화분이며 날이 제법 예리한 사금파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폐허 속에서도 식물은 자라는구나.

목련이며, 석류나무, 감나무, 가죽나무, 소철까지. 식물들은 무던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들어 가는 골목을 거닐며 트롤리 딜레마를 떠올렸다. 달려오는 전차를 그대로 두면 다섯 명이 죽고 선로를 바꾼다면 한 사람이 희생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조만간 뿌리째 뽑혀 나갈 식물들을 바라보며 비슷한 질문이 떠올랐다.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발과 정비를 위해 이 생명들의 희생은 약간의 비용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의 판단뿐만 아니라 환경에 관한 관점에서도 딜레마는 발생한다. 옮겨 심기보다 베어내기가 채산성이 좋다는 현실 앞에서 식물은 항상 뒷전일 수밖에 없다.

철거와 함께 지형도가 바뀌면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도 차츰 잊힐 것이다. 수학적 계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함도 함께 지워지겠지. 어느 집 정원의 멀칭 재료나 어느 열병합발전소의 땔감으로 사라질 식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개발을 위해 희생해도 되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 앞에서 생기는 이 서운함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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