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기 전에 먼저 가보자…필리핀 카가얀데오로의 ‘반전 여행’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유명해진 여행지는 실패할 확률이 낮다. 반면 남보다 먼저 발견하는 재미는 줄어든다.
필리핀 카가얀데오로(Cagayan de Oro)는 아직 한국인에게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여행지다.
세부, 보라카이, 보홀처럼 이름만 들어도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가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고원으로 올라가 골프채를 잡는다. 산 정상에선 집라인으로 숲 위를 날고, 카가얀강에서는 급류를 탄다. 가톨릭 성지에서 여행의 호흡을 늦춘 뒤 밤에는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본다.
카가얀데오로 하나만 보는 여행이 아니다. 이 도시를 관문으로 미사미스 오리엔탈과 부키드논을 함께 묶어야 카가얀데오로 여행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파인애플 농장 속에서 티샷…델몬트 골프클럽
골퍼라면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부키드논 마놀로 포르티치 카와야논에 자리한 델몬트 골프클럽(Del Monte Golf Club)이다.
카가얀데오로에서 부키드논 고원 방향으로 올라가면 광대한 델몬트 파인애플 플랜테이션을 만난다. 그 안에 18홀 골프코스가 들어서 있다.
1928년 문을 연 북부 민다나오의 오래된 골프장으로, 필리핀 골프대회가 꾸준히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2025년에도 필리핀 주니어골프투어와 프로대회가 델몬트에서 열렸다.
화려한 리조트형 골프장과는 결이 다르다. 나무가 양쪽을 조이는 페어웨이와 인공호수, 벙커가 곳곳에 자리해 방향성이 중요하다. 짧아 보여도 티샷이 흔들리면 다음 샷이 까다로워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골프장 밖 풍경이다. 파인애플 농장이 넓게 펼쳐지고 멀리 부키드논 산악지대가 이어진다. 도시 한복판 골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장면이다.
◇골프채 내려놓고 이번에는 840m를 난다
델몬트 골프장에서 멀지 않은 마놀로 포르티치 다힐라얀에는 다힐라얀 어드벤처 파크(Dahilayan Adventure Park)가 있다.
시그니처는 840m 듀얼 집라인이다. 파크 측은 이를 ‘아시아 최장 듀얼 집라인’으로 소개한다.
출발 지점은 해발 약 4500피트, 약 1370m다. 출발대에서 몸을 엎드린 채 숲을 향해 뛰어든다. 속도는 시속 60~80㎞에 달한다.
앉아서 내려가는 일반적인 집라인보다 말 그대로 ‘슈퍼맨’처럼 앞으로 엎드려 날아가는 느낌에 가깝다. 곧바로 840m에 직행하지 않아도 된다. 320m와 150m 훈련용 집라인을 먼저 경험할 수 있다.
더 센 자극을 원하는 여행객에게는 120피트, 약 36m 높이에서 떨어지는 드롭존이 기다린다.
산악 레일을 질주하는 ‘레이저백 마운틴 코스터’도 있다. 다힐라얀 측에 따르면 필리핀 최초의 알파인 마운틴 코스터로, 약 600m 트랙을 달린다.
아침에 골프를 쳤던 사람이 몇 시간 뒤 숲 위를 날 수 있다는 것. 북부 민다나오 여행의 매력은 하루 안에서도 여행의 장르가 계속 바뀐다는 데 있다.
◇‘열대 필리핀’에서 만난 고원 풍경
카가얀데오로에서 동쪽 산악도로인 루트 955를 따라가면 또 다른 얼굴이 나온다. 미사미스 오리엔탈 클라베리아다.
루트 955는 빌라누에바와 클라베리아를 거쳐 깅고옥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악도로다. 이 길의 대표적인 쉼표가 클라베리아 뷰 데크다.
전망대에서는 발라투칸 산맥과 미사미스 오리엔탈의 내륙 산악지대가 넓게 펼쳐진다. 날씨가 맞으면 산허리에 구름이 내려앉아 운해도 볼 수 있다.
야자수와 해변으로 대표되는 필리핀 풍경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 여행객에게 카가얀데오로 권역이 의외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만 있는 필리핀이 아니다.
최근 미사미스 오리엔탈 관광당국도 루트 955와 클라베리아 일대를 주요 관광코스로 적극 소개하고 있다.
◇카가얀데오로의 원조는 역시 ‘급류’
카가얀데오로를 대표하는 액티비티 하나만 고르라면 래프팅을 빼놓을 수 없다. 카가얀강은 연중 래프팅이 가능하고 초보자부터 상급자까지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코스는 14개 급류, 상급 코스는 21개 급류를 통과한다.
처음에는 한 배에 탄 사람들이 서로 낯설다. 그러나 급류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뒤로”라는 가이드의 한국어 구호에 맞춰 함께 노를 젓는다. 물살을 정면으로 맞고 급류 하나를 넘고 나면 어느새 팀이 된다.
필리핀 관광부 북부 민다나오 지역도 카가얀데오로를 대표하는 어드벤처 관광 콘텐츠로 래프팅을 꾸준히 내세우고 있다.
◇바다에서 놀다가 50피트 예수상을 만난다
카가얀데로오에선 스쿠버다이빙과 씨워커, 스노클링,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오면 분위기가 정반대로 바뀐다. 카가얀데오로 서쪽 엘살바도르에 자리한 디바인 머시 성지(Divine Mercy Shrine)다.
미사미스 오리엔탈을 대표하는 가톨릭 순례지로, 언덕 정상의 50피트 높이 ‘하느님의 자비’ 예수상이 상징이다.
성상 앞으로 올라가면 마카할라 만이 내려다보인다. 성지는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현지 신자들 사이에서는 성지에서 경험했다는 치유와 신앙 체험담이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다.
다만 여행자가 기억할 점도 있다. 이곳은 관광지에 앞서 종교시설이다. 노출이 심한 복장은 제한되며 경건한 관람이 요구된다.
◇실탄사격하고, 야경 보며 하루를 접는다
카가얀데오로에서는 실탄사격도 경험할 수 있다. 현지 사격장에서 클래식 총기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총기를 직접 접할 수 있다.
낮 동안 바다와 산을 오갔다면 하루의 마지막은 조금 느리게 가도 좋다. 카가얀데오로 마카산디그 언덕에 자리한 하이리지(High Ridge)는 시내 야경을 내려다보는 대표적인 식당이다.
이곳이 내세우는 것도 ‘위에서 바라보는 카가얀데오로’다. 오후 4시부터 문을 열어 해가 지고 도시 불빛이 켜지는 시간대와 잘 맞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낮 동안 다녔던 카가얀데오로가 또 다르게 보인다.
◇유명해지기 전에 가는 맛
카가얀데오로는 한국에서 아직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여행자의 관점에서는 그 약점이 그대로 장점이 된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한 거리도, 익숙한 한글 간판도 아직 흔하지 않다. 정해진 포토존에서 같은 사진을 찍기보다 직접 보고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많다.
한국 여행업계도 가능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투어민을 비롯한 가족·허니문·골프 전문 여행사와 미디어 관계자들이 미사미스 오리엔탈과 카가얀데오로 일대를 답사했다.
2일에는 줄리엣 우이 미사미스 오리엔탈 주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 여행업계를 위한 ‘주지사의 밤’도 열렸다.
한국시장 공략의 다음 단계는 하늘길이다. 현재 여행업계에서는 2027년 2월 설 연휴 기간 인천과 카가얀데오로 권역을 잇는 전세기 1회 운항을 추진하고 있다.
가족·허니문 전문여행사 투어민도 코론에 이어 카가얀데오로를 새로운 필리핀 여행 목적지로 선정해 상품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세기가 현실화하면 한국 여행객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던 접근성도 달라질 수 있다.
세부와 보라카이, 보홀도 처음부터 한국인이 몰리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먼저 간 사람들이 새로운 풍경을 발견했고, 돌아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카가얀데오로도 이제 막 그 출발선에 서 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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