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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의 시, 시의 세계]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경탄하지 않으면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순수한 힘의 유희.

[세계의 시, 시의 세계]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세계의 시, 시의 세계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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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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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을 기계는 위협한다, 기계는

순응하지 않고 뻔뻔스레 정신 속에 머물려 한다.

우아한 손의 아름다운 머뭇거림이 사라지면서

기계는 건축하려는 의지로 세차게 돌을 쪼갠다.

기계는 뒤처지지 않아,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기계는 조용한 공장에서 기름칠하며 자신에게만 속한다.

기계는 생명이라며, 자기 자신을 최고라고 믿으며,

같은 결단으로 정돈하고, 창조하고, 파괴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존재에 매력을 느낀다, 수백의

곳에 아직 근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무릎 꿇고서

경탄하지 않으면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순수한 힘의 유희.

말은 여전히 형언할 수 없음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그리고 음악은, 언제나 새로이, 가장 잘 떠는 돌들로

쓸모없는 공간에 자신의 신격화된 집을 짓는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릴케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을 맞아 마지막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개정판(김재혁 옮김, 민음사)이 출간되었다.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를 호명하며 시가 삶과 죽음을 넘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노래한 연작시집이다. 릴케는 1922년 스위스 뮈조성에서 55편의 소네트를 몇달 만에 폭풍처럼 써내려갔다. 2부의 열 번째 소네트인 이 시에서, 시인은 인간이 손으로 이루어놓은 세계를 위협하는 기계의 힘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기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편, ‘그러나 아직도’로 시작되는 후반부에서는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이 남아 있음을, “쓸모없는 공간에 자신의 신격화된 집을 짓는” 시와 음악이 있음을 강조한다. 기계의 건축과 예술의 신전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릴케는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이 존재의 힘을 약화시키고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것을 염려했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의 상실을 경고했던 것처럼. 하이데거는 릴케와 횔덜린을 ‘궁핍한 시대의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릴케의 시가 형이상학적 전통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AI가 글쓰기마저 위협하는 요즘의 세태 속에서 릴케의 고전적 정신이 한결 소중하게 여겨진다. “여전히 형언할 수 없음의 가장자리를 스치”는 말의 기운을 무릎 꿇고 기다리며 시인의 자리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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