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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내가 죽어야 한다면

가자지구의 폭격과 학살이 100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 3년 동안 7만3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중 2만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도시를 초토화하고 난민촌 텐트마저 날려버리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에 가자지구는 절멸의 위험에 놓여 있다.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내가 죽어야 한다면

세계의 시, 시의 세계

내가 죽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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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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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한다면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

내 살림을 팔아서

천 한 조각,

실 한 타래를 사줘

(하얗고, 꼬리를 길게 만들길)

가자 어딘가의 한 아이가

하늘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불길 속 떠난 아빠,

그 누구와도

살붙이와도

스스로와도 작별 인사 못한

아빠를 기다릴 때

네가 만든 나의 연이

날아오르는 걸 볼 수 있도록

순간,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도록

내가 죽어야 한다면

희망을 낳기를

이야기로 남기를

-리파트 알아리르(1979~2023)

가자지구의 폭격과 학살이 100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 3년 동안 7만3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중 2만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도시를 초토화하고 난민촌 텐트마저 날려버리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에 가자지구는 절멸의 위험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 연대하기 위해 서른네 편의 시를 여덟 명의 번역가가 옮긴 <팔레스타인 시선집>이 출간되었다. 판매 수익은 가자 주민들을 돕는 단체인 사미르 프로젝트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는 시선집 첫머리에 실려 있다. 예언 또는 유언에 가까운 이 시는 2011년 딸 샤이마를 위해 썼는데, 그로부터 12년 후 시인은 공습으로 가족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이라는 가정법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죽더라도 “내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하면서 “내 살림을 팔아서 천 한 조각, 실 한 타래”를 사달라고 청한다. 그걸로 흰 연을 만들어 날려달라고. 그러면 한 아이가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난 아빠를 기다릴 때, “하늘의 눈”과도 같은 흰 연을 바라보며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연을 바라볼 ‘한 아이’조차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참혹한 비극이다. 이 가족은 가자에 살았다는 것 말고는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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