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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나의 형 미겔에게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나의 형 미겔에게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마루, 현관, 통로.

그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게 생각이 나.

형! 8월 어느 날 밤,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웃으며 숨는 대신 시무룩했었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형의 쌍둥이는

지금 형을 못 찾아 시무룩해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내리는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실 수 있잖아.

- 세사르 바예호(1892~1938)

세사르 바예호는 슬픔의 시인이다. 청년기에 형과 어머니를 잃었고, 정치적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했다. 페루에서 파리로 이주한 이후에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가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비운의 시인은 개인적 상실을 통해 노동자나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연대하며 라틴아메리카 시의 거장으로 남았다. ‘나의 형 미겔에게’는 첫 시집 <검은 전령>에 실려 있는 서정시다. 실제 쌍둥이는 아니지만 ‘나’에게 ‘형’은 심장을 나눠 가진 영혼의 쌍둥이와도 같은 존재다. 이 시에서 형의 죽음은 어린 시절 함께하던 ‘술래잡기’에 비유된다. 술래가 찾지 못하게 꼭꼭 숨듯이, 죽는다는 것은 숨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곳으로, 너무 깊이 숨어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자의 기다림과 애도는 끝이 없고, 영혼의 숨바꼭질은 현재 진행형이다. 형의 죽음도, 나의 애도도, 극적인 감정보다는 ‘시무룩하다’는 형용사로 표현된다. 기다림에 지쳤지만 형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닌 상태. 페루 주택에도 한옥처럼 ‘툇마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좋은 공간이다. 나 역시 작년 여름 떠난 젊은 제자를 기다리며 중얼거린다. 이 친구야, 어서 나와. 자네 부모님이 기다리시잖아. 금방이라도 어스름 속에서 그가 나타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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