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스로픽 종이책 스캔
세계 책의 날 숨은 기원
타인과 연결하는 낭만 매체
활자 사이 유영하는 퇴보형 인간
낭만적인 연결의 도구를 쥐고 활자 사이를 유영해온 나는 어쩌면 퇴보형 인간일 것이다. /구글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로 생성한 이미지
AI가 유압 절단기로 책의 척추를 잘라 1초 만에 데이터로 흡수하는 파괴적 스캔의 시대다. 독서가 정보 습득을 위한 비효율적 수단으로 전락한 듯 보이지만 책은 결코 무미건조한 데이터베이스에 머물지 않는다. 효율을 넘어 타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낭만적인 비효율이야말로 데이터 홍수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시선을 지켜낼 유일한 태도이지 않을까.
책의 척추(책등)를 잘라낸다.
텍스트는 디지털 데이터로 추출됐고 남은 종이의 물성은 모두 폐기됐다. 내부 문건에 적힌 목표는 명확했다. 세상의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destructively scan)하는 것이다. AI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인류의 지적 유산이 한낱 천연자원이나 땔감처럼 우겨 넣어지는 시대다.
효율성과 데이터의 총량이 권력이 된 이 세계에서 책의 물성을 더듬고 종이 냄새를 맡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나는 어쩌면 지독한 퇴보형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정보의 군집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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