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공공정책연구소(IPP) 대표
신보수의 출현에 관한 AI 이미지.
6·3 지방선거는 숫자만 보면 보수의 참패다. 광역단체장 16곳 중 더불어민주당이 12곳, 국민의힘이 4곳을 가져갔다. 지방 권력의 지형은 한동안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서울만은 예외처럼 남았다. 이 예외를 만든 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읽지 못하면, 보수의 다음 10년을 설계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은 단순히 “보수가 겨우 지켜낸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다. 오세훈 후보는 최종 득표율 49.22%로, 48.07%를 기록한 정원오 후보를 1.15%p 차이로 눌렀다. 막판 대역전이었다. 더 주목할 것은 그동안 진보 정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여겨지던 청년 여성층의 이탈이다. 출구조사 기준이지만, 서울 30대 여성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53.6%로 정원오 후보의 42.8%를 앞섰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0대 여성의 54.1%가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지지했던 것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서울의 지형은 더 이상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기득권 기성세대 대 박탈감 누적 세대”의 대립에 가깝다. 오세훈을 선택한 서울 거주 2030 유권자들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과 재개발 사업의 연속성을 핵심 이유로 꼽았다. 이들은 반공·이념 프레임이 아니라, 주거·노동·세대 분배를 기준으로 표를 던졌다.
전국적으로 봐도 20·30대의 움직임은 단순하지 않았다. 출구조사 기준으로 20대 이하 남성의 55.8%가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반면, 20대 이하 여성은 66.4%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성별 표심의 분화가 뚜렷했다. 특정 정당에 고정되지 않은 채 선거마다 선택을 바꾸는 스윙보터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이들은 복지와 재정 건전성의 이념 논쟁보다 자신의 세대가 얼마나 부담을 떠안는지, 그 부담이 공정하게 분배되는지에 더 민감하다. 불만은 크지만 냉소만 있는 세대가 아니라, 기준은 더 까다롭고 선택은 더 유동적인 정치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 세대의 이동을 단순히 “보수화”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더 정확한 이름은 ‘실용적 신보수’에 가깝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진영이 더 정의로운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자기 세대의 생애 경로를 최소한 보장해 줄 수 있는가이다. 주거 가격, 정규직 진입, 연금 고갈, 세대 간 조세 부담 같은 문제에서 이들은 이미 냉정하게 계산을 끝냈다. 재정 부담에서는 보수적이고, 세대 전환 요구에서는 급진적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 계산에서 신뢰를 잃은 쪽은 다음 선거에서 한 번에 버림받는다.
문제는 기성 보수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기존 보수정당은 2030에게서 표를 얻고도 그 의미를 끝까지 읽어내지 못한다. 청년 최고위원 몇 명을 영입하고, 유튜브·쇼츠에 친숙한 얼굴을 전면에 세우는 것만으로 세대 분화에 대응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공천 시스템은 여전히 계파와 지역 조직의 이해관계에 묶여 있고, 2030의 의제는 늘 정책 우선순위의 뒤쪽으로 밀린다. 보수는 청년을 홍보용 장식으로만 취급하고, 진짜 권력이 분배되는 자리에 이들을 올려놓지 않는다.
서울의 2030이 오세훈을 선택한 것은 “보수가 멋져서”가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나쁠 것 같지는 않다”는 냉정한 판단이었다. 서울 청년층의 표심은 현안과 정책, 후보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내부의 평가다. 기성 진보가 청년 담론을 독점해 온 시간 동안, 청년의 불안은 주거·노동·연금에서 훨씬 더 구체적인 문제로 축적됐다. 그 틈으로 신보수의 가능성이 들어왔다.
따라서 보수 재편의 핵심은 더 이상 보수 대통합이 아니다. 통합의 구호 아래 낡은 인물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2030에게 “이제 우리 편이 되라”고 요구하는 정치는 설득력이 없다. 필요한 것은 보수 내부의 세대 분화, 그리고 그 분화를 제도와 조직으로 인정하는 신보수 질서다. 40·50대 기성 보수가 지역 조직과 재정·경험을 책임진다면, 2030 신보수는 의제 설정과 디지털 공간, 새로운 연대 방식을 주도해야 한다. 이 역할 분담 없이 세대 갈등을 통합이라는 단어로 덮으려 하면, 젊은 보수는 다시 흩어진다.
정당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청년 비례 몇 석, 청년 최고위원 몇 자리로는 부족하다. 공천 규칙에서 일정 비율을 2030 세대에게 강제 배정하고, 국민·당원 경선 구조를 통해 실제로 2030 유권자가 보수 후보를 선택하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당 내에서 신보수 그룹이 하나의 세대 정당처럼 독자적인 노선과 후보를 내세울 수 있어야, 보수라는 간판 아래 서로 다른 세대의 이해와 언어가 공존할 수 있다. 신보수가 기존 보수의 부속품으로 남는 한, 세대 분화는 분열의 씨앗으로만 남는다.
6·3 지방선거는 보수가 졌다는 사실보다, 누가 보수의 재건을 이끌 주체인가를 드러낸 선거였다. 전국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서울과 2030의 움직임은 다른 정치 지도를 예고한다. 보수는 지금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세대 분화를 지우고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세대 분화를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보수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 신보수의 출발선은 여기서 갈린다.
김범준의 보수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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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공공정책연구소(IPP) 대표, (사) 행복한출생 든든한미래 사무총장
(전)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국제정치 전공), 부산대 특임교수, 웨스턴워싱턴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리얼미터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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