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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새마을운동의 출발지 가나안농군학교...이 학교의 김평일 교장

'한강의 기적'이란 조국근대화가 20세기 '유일한 경이(only wonder)'로 불리는 이유는 남북대치와 자원빈곤이란 최악의 조건에서 압축성과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의 출발지 가나안농군학교...이 학교의 김평일 교장

'한강의 기적'이란 조국근대화가 20세기 '유일한 경이(only wonder)'로 불리는 이유는 남북대치와 자원빈곤이란 최악의 조건에서 압축성과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국근대화는 일제와 두번의 전쟁(태평양전쟁, 6.25)을 겪은 5천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의 위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가나안농군학교는 바로 조국근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5.16 혁명 이듬해 혁명평의회 박정희의장이 30여명의 군인사들과 함께 가나안농군학교를 찾은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방문한 박의장에게 김용기 장로는 "군인으로 나라를 지켜야지 왜 정치를 하려고 합니까?"라는 항의성 푸념은 돌발적 발언이나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소위 "Was tun: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혁명정부의 관건이었던 것이다. 당시 자료는 김장로의 질문에 박대통령은 고개를 숙이며 "혁명은 하였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할지 어렵다"는 고뇌에찬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혁명주체들은 한적한 농장까지 누비며 나라와 미래를 고뇌한 '학습하는 지도자(learning leader)'의 전범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군사정부도 남미형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채택하는 등 초기의 혼선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영민한 박대통령은 초기의 실패를 바탕으로 수출주도형으로 극적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는 독일(서독)의 전설적 경제장관이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총리의 조언, 즉 물류혁명 우선,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에로의 전환, 철강-조선-자동차 3각 구도, 한일국교정상화 등이었다.

그러나 조국근대화의 진정한 위대함은 특정인이나 외부요소 보다 군인, 기업인, 과학자, 관료 그리고 농촌운동가들 까지 포함된 기적의 팀 빌딩에 있었다. 김용기(1909/농민운동가), 장기려(1909/의사), 이병철(1910/삼성), 정주영(1914/현대), 박정희(1917/대통령), 최형섭(1920/과학자), 김학렬(1923/관료)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게으르고 거짓말하는 조센징"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죽음과 전쟁을 불사하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실지로 박대통령은 가나안농군학교를 보며 근면, 자조, 혐력으로 압축되는 새마을운동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표어와 "하면 된다"는 청교도적 의식혁명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국제적으로 알려진데 비해, 새마을운동의 출발지인 가나안농군학교는 전혀 잊혀진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당초 위치했던 하남시에서 수용되어 우여곡절 끝에 양평군 지평리의 깊은 산속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무엇보다 초고속 산업화에 밀려 농업은 주변으로 밀려났고, 의식교육을 전담하는 기능축소와 함께 사스, 코로나 등의 직격탄으로 수년간 기능마비와 함께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된 것이다.

필자 일행이 찾아간 가나안농군학교(교장 김평일)는 빼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강의동, 기숙사, 식당, 교회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시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품 등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는 하소연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미 배고픈 시절 "하면 된다"는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밤 10시까지 강행하는 스파르타식 훈련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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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하봉규 명예교수(부경대학교, 헤리티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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