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전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AI 반도체 등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에 110조원 이상, SK하이닉스는 올해 40조원 안팎을 각각 투자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올해 110조원 이상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한다고 알렸다. 100조원 이상 투자는 올해가 처음으로, 지난해의 경우 시설 52조7000억원, R&D 37조7000억원 등, 총 90조4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2단지 5라인(P5) 공사가 재개되면서 많은 설비 투자 비용이 투입될 것"이라며 "특히 HBM4E와 HBM5 등 차세대 제품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P5 공사 재개 사실을 알렸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능력(캐파) 확대 전략이다. P5는 현재 골조 공사를 진행 중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 18일 개최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케펙스 투자에 대해 "올해 이미 전년 대비 상당 부분 증가했다"며 "우선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차세대 공정 선행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파운드리 분야 투자도 이어질 전망이다. 전 부회장은 "(파운드리) 성장 국면이 포착된다. 특히 2나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강화할 것"이라며 "데이터·로봇, 선단 공정에 집중해 차별화된 기술력, 어드밴스드 패키징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바탕으로 미래사업 투자에 나설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첨단 로봇·메드테크(의료 기술)·전장·냉난방공조(HVAC)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는 중장기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해 미래 경쟁력을 가진 사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려는 것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반도체 설비 및 R&D 투자 금액을 전년 대비 확대한다. 지난해에는 설비 투자에 30조1730억원을 쏟아부었고, R&D에도 6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총투자액은 36조8730억원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용인 클러스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용인 팹에만 총 600조원에 달하는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가동) 시기가 얼마나 빨리 당겨질지 따져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첫 번째 생산 공장(1기 팹) 건설을 위해 21조6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확정했다. 급증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함이다. 이번 추가 투자 발표로 용인 클러스터 1기 팹 건설에 투입되는 시설 투자 규모는 약 31조원이다.
팹 1기는 총 6개의 클린룸으로 구성되며, 클린룸에 들어가는 반도체 장비에 약 120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 건설비 약 30조원 등을 고려하면 팹 1기당 150조원이 소요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60만평 부지에 4개 팹을 건설할 예정이어서, 총투자비는 600조원에 달하게 된다.
회사 측은 당초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당시 총 투자 금액을 450조원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장비 가격 등이 크게 올랐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클린룸 오픈 시기를 2027년 5월에서 같은 해 2월로 3개월 정도 앞당길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오픈을 위해 20조원을 투자했다. 더불어 후공정 팹인 P&T7에 19조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에 31조원, ASML의 EUV(극자외선) 장비 도입을 위해 12조원을 투입하는 등 잇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M15X 공장의 두 번째 클린룸을 개방하고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곽노정 사장은 지난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래 투자를 위해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에서 신주 발행을 통한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도 추진 중이라고 공개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통해 15조원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현금 및 ADR 상장은 재무건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인 일정으로 시점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의 잇따른 투자에 대해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지금이 기회이기 때문이다. AI 반도체 시장이 지속 성장할 전망인 만큼, HBM 메모리 개발·양산에 대해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며 "특히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에서 상당한 기회가 오고 있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AI 반도체 존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양사는 투자 확대에서는 유사한 행보를 하고 있지만, 배당 정책에서는 다소 온도 차이를 보인다. 최근 열린 주총 분위기도 상반된 모습이었다. 특별배당 등을 잇따라 시행 중인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이렇다할 배당 정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해 주주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고 있다"며 "반면 SK하이닉스는 배당도 없었고 현금만 100조원 모으겠다고 하자, 결국 주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고 양사의 주총 분위기를 진단했다.
특히 주주들은 SK하이닉스가 임직원에게 연봉 1억원 기준으로 지난해 1억6000억원(160%) 성과급을 지급했지만, 배당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올해는 실적 호조에 따라 4억원(400%)에 달하는 성과급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또한 SK하이닉스가 현금 100조원을 조달할 경우,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 실행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신주 발행 방식으로 미국에서 ADR 상장을 하면 주가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5일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될 수 있는 신주 발행 방식에 반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포럼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현금을 약 35조원 보유하고 있다. 2026~2028년 SK하이닉스가 189조원의 설비 투자와 수십조원 R&D 투자를 집행해도 잉여현금 흐름은 67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ADR 상장은 개정 상법의 시험대다. 이사들이 개정 상법에 충실하다면 명백히 더 나은 대안을 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증권가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ADR 상장되면, 국내 주식 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이 멀티플(주가 배수)을 더 잘 받는 이유가 혹시나 상장된 국가 때문이라면,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상장되면 밸류에이션 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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