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내놓으라며 5월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측이 제시한 보상안을 거부하고 나선 행동이다. 파업은 삼성전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부진을 딛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수출 한국호(號)의 엔진이 꺼지는 사태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미중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밀려오는 엄중한 시기라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뉴스웍스는 삼성전자 노사의 주장과 간극을 해부하고,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대한민국 경제와 글로벌 반도체 질서에 미칠 파장을 5회 시리즈로 심층 점검한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노조원들이 17일 개최한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선언한 가운데, 1·2·3차 협력사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생산을 중단하면 협력사는 납품 물량이 끊겨 경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협력사 수는 1754개에 달하는데, 파업을 앞둔 현재 이들 업체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키운다…중소 협력사 감원 압박 우려
삼성전자 생산이 멈추면 협력사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파견·용역 노동자들에게 휴업·감원 압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고용 유지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 협력사들은 비정규직과 파견 인력에 대한 감원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차 협력회사는 1061개사, 2·3차 협력회사는 693개사다.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은 본사에 머무르지 않고 다층적 협력사 생태계로 전이될 수 있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파업이 하청·협력사 직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임금·안정성·복지 등 근로 조건이 양호한 1차 시장과 열악한 2차 시장으로 양분되고, 두 시장 사이에 이동이 어려운 현상을 뜻한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1차 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시장으로 나뉘며, 기업 간 격차가 이중구조를 키우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기 둔화의 1차 충격은 대개 하청·협력사와 지역 영세 자영업, 저소득층 고용으로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 파업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고착화'를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생산라인 한 개당 협력사를 포함해 약 3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추세대로라면 6공장(P6)이 완공되는 2030년까지 총 21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면 이 같은 대규모 고용 기반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이 10%만 줄어도 국내총생산(GDP)이 0.78%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노조가 17일 개최한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서 노조 가입자수 변화 추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협력사·지역경제까지 번지는 '그림자 파장'…숨은 피해자 급증 우려
대기업 공장 가동이 줄면 협력사뿐 아니라 파업과 직접 관계가 없는 지역 경제의 취약 계층까지 피해를 떠안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증설이 진행 중인 평택에는 하루 2만명 안팎의 인력이 투입될 만큼 지역경제 파급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장 가동과 투자 일정이 흔들리면 물류·식당·숙박·주변 자영업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평택캠퍼스 주변 상권은 2024년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투자 속도 조절로 P5 생산라인 공사가 중단된 뒤, 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건설 노동자와 협력업체 직원 수천 명이 한꺼번에 철수하면서 평택 고덕신도시 일대가 일시적 불황에 시달린 바 있다. 당시 평택 고덕신도시의 식당·카페·술집 손님의 80~90%가 삼성 현장 인력이었던 터라, 인력이 빠지자 문을 닫는 식당이 속출했다.
물류 운송 업체, 식자재 납품업체, 인근 원룸촌까지 이어진 '삼성 경제 생태계'는 2025년 말까지 침체기를 겪었다. 2025년 하반기부터 메모리 업황이 회복되고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2025년 11월 P5 공사가 재개되자, 주변 상권도 이제야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택시 인구는 삼성전자 투자 이후 2015년 46만명에서 2023년 58만5000명으로 27%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사업체 수는 3만1985개에서 6만910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종사자 수는 35.7% 증가했다. 지방세 징수액도 3600억원에서 6259억원으로 약 74% 늘었다.
삼성전자 노조는 수억 원대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오는 23일 오후 1시 평택사업장 사무복합동에서 집회를 연다. 이어 다음 달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삼성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한 지역 경제 전체를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노조의 80%가 반도체(DS) 부문 인력이다. 반도체는 속성상 한 번 가동을 중단하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삼성전자 파업은 지역사회뿐 아니라 한국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무역수지 대부분을 반도체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AI 투자를 위해 반도체를 구입하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시기를 놓치면 국가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도 삼성전자에 반도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5개 사업부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파업이 노노 갈등으로까지 번지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며 "회사 측도 미래 투자 재원이 얼마나 필요하고, 주주환원과 직원 보상에 각각 얼마를 쓸 수 있는지 노조 측에 명확히 알려 양측이 빠르게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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