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요구액, 시장 전망 적용하면 40조~45조원대 거론
작년 R&D 투자·연간 배당 웃도는 규모
AI 반도체 경쟁 격화 속 美·日·대만은 생산능력·공급망 투자 확대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권상희 기자]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산업 경쟁력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반도체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고급 인력 확보가 동시에 필요한 대표적 장치산업이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상 수십조원대 성과급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주주환원은 물론 미래 투자 재원 배분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 대만이 생산기지와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 투자 확대에 속도를 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 반도체의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업이익 15% 성과급 요구…R&D 비용 상회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사측에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공시된 삼성전자의 1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이다.
앞서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하기를 요구했으나, 1분기 실적 발표 후 요구 조건을 상향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연간 이익 전망치를 적용하면 노조 요구 규모가 40조~45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
다만 노조의 요구는 회사의 기존 자금 운용 틀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AI 반도체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시설과 R&D에 1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연간 R&D 투자만 37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호황기에 성과 보상을 강화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성과급이 투자 재원보다 더 큰 비중으로 커질 경우 향후 생산능력 확대와 공정 전환, 차세대 메모리와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과급 요구액이 주주환원 규모를 크게 웃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배당은 11조1000억원 수준으로, 올해 노조가 제시한 금액은 4배에 달하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 유지와 함께 의미 있는 인수합병(M&A)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보너스 상한을 없애면 자본집약적이고 경기 변동이 큰 산업에서 미래 투자와 주주환원 재원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커지는 부담…한국만 멈출 수 없다
더 큰 변수는 글로벌 경쟁 환경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차세대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6315억엔을 추가 지원하며 총 연구개발 지원 규모를 2조3540억엔으로 늘렸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투자 규모를 총 1650억달러로 확대했고, 시장에서는 1분기 순이익이 50% 급증하며 4개 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수요를 등에 업은 선도 기업들이 생산능력과 첨단 공정, 공급망 안전판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의 노사 갈등이 투자 논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평가다.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23일 집회를 거쳐 다음달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고 예고한 점도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노조는 실적 개선에 기여한 임직원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인재 유출 방지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이제 노사 간 몫 배분을 넘어,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이익을 현재 보상에 쓰고 어느 정도를 미래 투자로 남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시점에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 보상과 투자 여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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