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바이오 동반 호황 속 확산되는 노사 갈등
파업 현실화 땐 공급망·수주 경쟁력까지 영향 불가피
성장 국면에서 드러난 인재·보상 구조적 딜레마
챗GPT로 생성한 AI 이미지입니다.
[오피니언뉴스=박정훈 기자] 삼성의 핵심 계열사들이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 방해가 따른다)의 국면에 들어섰다. 반도체 업황 반등의 초입에 선 삼성전자와 글로벌 바이오 위탁생산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통적으로 내부 균열이라는 변수와 마주하고 있다.
호황의 물살 앞에서 드러난 내부 균열
두 회사 노조의 핵심 요구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재원으로 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의 폐지다. 현재의 보상 체계에서는 성과가 크게 개선돼도 지급 수준에 제한이 존재하는데, 노조는 이를 '성과에 비례하지 않는 보상 체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 모두 글로벌 인재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보상 체계 개선 없이는 핵심 인력 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업황 변동성이 크고, 현재의 실적 개선 역시 구조적 성장이라기보다는 회복 국면의 성격이 강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바이오 역시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장기 계약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고려할 때, 단기 성과를 곧바로 인건비 증가로 연결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즉 '성과의 즉각적 분배'와 '미래를 위한 유보'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갈등은 통상적 임금 분쟁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의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뚜렷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직전 분기 대비 매출은 41.73%, 영업이익은 185% 증가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각각 68.06%, 755.01% 증가했다. AI 생태계 확장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확대와 레거시 메모리 회복,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 판매 호조가 맞물린 결과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말 6억6800만 달러 규모의 복수 생산 계약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에는 14억10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을 수주했다. 이어 5월과 11월에도 신규 및 증액 계약을 연달아 따내며 유럽 시장 수출 확대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두 회사는 밀려오는 호황의 물살에 올라타기 위해 힘껏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2024년 총파업 궐기대회.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내부에서는 그 흐름을 가로막는 균열이 확대되고 있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회사는 협상 지속 의지를 보이면서도 구조적 부담을 이유로 선을 긋고 있다. 관건은 이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외부 기회를 온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파장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는 생산 라인의 특성상 일시적 중단만으로도 수율 안정성과 납기 일정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고객사 대응 지연과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 사업 역시 계약 기반 구조를 고려할 때 제조 일정에 한 번 차질이 발생하면 위약금 부담뿐 아니라 장기 파트너십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내부 갈등이 외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는 구조다.
노조 나름의 논리 그리고 차가운 여론
이 같은 상황에서 여론은 대체로 노조에 비판적인 분위기다. 이미 높은 수준의 연봉과 복지를 받고 있는 대기업 직원들이 "경쟁사 대비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추가적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는 대기업 노조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임직원들의 개인 정보를 열람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여론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다.
다만, 노조의 논리 역시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IT 및 바이오 기업과 비교했을 때 보상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는 꾸준히 제기돼 온 사안이다. 성과가 뚜렷한 시기에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이러한 요구가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삼성의 딜레마, 성장과 분배 사이
삼성의 계산은 복잡하다.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거나 확대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조직 내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 구조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이를 억제할 경우 인재 유출과 조직 사기 저하라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바이오 모두 인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갈등은 단순한 노사 협상을 넘어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무노조 경영' 기조가 약화된 이후 삼성 내부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흐름은 이러한 갈등을 구조적 문제로 만들고 있다.
지금 삼성은 외부적으로는 기회가 열리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기회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을지를 시험받고 있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임금 문제를 넘어 향후 노사 관계와 인재 전략, 그리고 기업 문화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호황의 흐름을 타고 도약할 것인지, 내부 균열로 속도가 늦춰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눈앞에 놓여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