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경쟁의 초점이 칩 자체의 성능에서 칩과 메모리, 광소자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로 옮겨가면서 유리기판 상용화가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기판의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소재로 평가된다. AI 모델이 커지고 고성능 GPU·CPU·HBM을 한 패키지 안에 더 많이 집적해야 하는 수요가 늘면서 기판의 대면적화, 열 안정성, 신호 전달 안정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기기판은 패키지 면적이 커질수록 휨 현상이 커진다. 이는 미세 회로 정렬 불량과 수율 저하로 이어진다. 유리기판은 열 변형이 적고 표면 평탄도가 우수해 이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또한 패턴 왜곡을 기존 대비 50% 줄이고 회로 밀도를 최대 10배까지 높일 수 있다.
상용화 기대를 키운 직접적 계기는 인텔의 첨단 패키징 수율 개선이다. 인텔의 EMIB-T 검증 수율이 약 90% 수준에 도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초대형 AI·HPC 패키징 구현 가능성이 부각됐다. EMIB는 칩 간 연결 부위에만 실리콘 브릿지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를 쓰는 TSMC CoWoS와 비교해 비용 효율성과 확장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EMIB 수율 개선이 곧 유리기판 자체의 양산 수율 확보를 뜻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인텔의 패키징 플랫폼 위에서 유리기판 적용 가능성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텔은 유리기판 샘플에서 상용화 난제로 꼽힌 미세 균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리기판이 연구개발 테마를 넘어 실제 적용 후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SKC 자회사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고객사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브로드컴과 애플에 샘플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이노텍은 구미 R&D 파일럿 라인에서 유리기판 개발을 진행 중이다. SKC의 양산 시점을 2026년 하반기, 삼성전기를 2027년 이후, LG이노텍을 2027~2028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기준은 단순한 기술 보유가 아니다. 샘플 공급, 고객사 신뢰성 평가, 파일럿 라인 수율 안정화, 양산 승인, 실제 공급 계약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검증이 핵심이다. 초기 시장에서는 기술 발표만으로도 주가가 움직일 수 있다. 중장기 프리미엄은 고객사 공정에 실제로 진입하고 반복 매출을 만들 수 있는 기업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SKC는 유리기판 직접 생산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내 기업으로 평가된다.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에 양산 인프라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고난도 임베딩 방식보다 상용화가 쉬운 논임베딩 제품을 앞세워 초기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SKC는 1조 원대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 부담을 낮추고 양산 투자 여력도 확보했다.
소재·장비 기업의 기회도 커지고 있다. 유리기판은 TGV, 도금, 배선, 연마, 검사 등 전 공정 난도가 높다. 특히 유리의 깨지기 쉬운 특성과 구리와의 낮은 접합력은 최종 수율을 좌우하는 난제다. 이 때문에 감광액, 박리액, 현상액, 특수 코팅제, CMP 패드 같은 공정 소재와 소모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에프엔에스테크는 유리기판용 CMP 패드를 앞세워 수혜 가능성이 부각된다. CMP 패드는 유리기판 평탄화 공정에서 표면 품질과 수율을 결정하는 핵심 소모품이다. 고객사 퀄을 통과하면 반복 매출과 락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와이씨켐은 유리기판용 감광액, 박리액, 현상액 등 핵심 소재 공급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유리와 구리의 접합력을 높이는 코팅제도 향후 확장성이 큰 분야다.
유리기판의 가치는 CPO 확산과 함께 더 커질 전망이다. CPO는 광학 부품을 AI 패키지 내부에 넣어 전기 신호를 빛 신호로 바꾸는 기술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1.6T급 이상으로 높아지면 기존 구리 배선만으로는 전력 손실과 신호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유리는 유전 손실이 낮고 투명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기판 내부나 표면 근처에 빛이 지나는 경로를 만들 수 있어 전기와 빛을 함께 다루는 차세대 패키징 구조에 적합하다.
유리기판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모든 관련 기업이 같은 폭의 수혜를 받기는 어렵다. 기술 가능성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이제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고객사 평가 통과와 양산 수율, 실제 공급 물량이다. 유리기판 투자의 초점도 테마에서 레퍼런스로 옮겨가야 한다. AI 반도체 패키징 경쟁의 다음 승부처는 누가 먼저 유리기판을 고객사 양산 공정 안에 넣느냐에 달려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방송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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