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사구의 재발견 기고 연재] ④ 인천 해안의 백사장과 곤충, 그리고 잃어버린 생명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 해안사구와 백사장은 흔히 휴식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육지를 보호하는 방파제이자 독특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빠른 개발 속에서 많은 것을 잃어왔다.

[사구의 재발견 기고 연재] ④ 인천 해안의 백사장과 곤충, 그리고 잃어버린 생명들

▲ 배양섭 인천대학교 매개체감염병연구소 교수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 해안사구와 백사장은 흔히 휴식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육지를 보호하는 방파제이자 독특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빠른 개발 속에서 많은 것을 잃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닻무늬길앞잡이'다. 곤충의 분류와 분포를 오랫동안 현장에서 관찰해 온 필자에게, 1990년대 인천의 백사장은 그야말로 역동적인 생태의 장이었다.

1996년 여름,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을 비롯해 용유해변과 마시안해변을 거닐 때면 발밑을 오가는 작고 아름다운 닻무늬길앞잡이와 마주치곤 했다. 이 곤충은 딱지날개에 하얀 닻(Anchor) 무늬를 새긴 채, 사람이 다가가면 길을 안내하듯 앞서 날아올랐다. 닻무늬길앞잡이는 당시 환경부 멸종위기종 지정돼있던 게 무색할 만큼 인천 해안에서 흔히 관찰되던 백사장의 터줏대감이자 최상위 포식자였다. 이들이 많다는 것은 곧 해안사구의 모래가 깨끗하고, 먹이사슬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인간의 레저 활동과 상업화는 이 생태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용유도 일대에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7년경이다. 고요했던 백사장에 사륜바이크(ATV)가 등장해 모래밭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바퀴는 닻무늬길앞잡이 유충이 서식하는 백사장을 짓밟았다. 밤이 되면 포장마차들이 야행성 곤충들의 생체 리듬을 교란하는 불빛을 밤새도록 뿜어냈다. 훼손과 빛공해 속에서 이들은 자취를 감췄고, 필자가 인천 해변에서 닻무늬길앞잡이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1999년이다. 현재 닻무늬길앞잡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들이 서식하는 곳은 충남 태안 마검포해변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곳마저도 환경 변화로 개체군이 축소되고 있어, 자칫 한반도 전체에서 이 매력적인 곤충을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리가 사는 인천의 현실을 돌아보자. 수십 년간 이어진 매립과 개발로 인천 내륙 해안선의 약 80%는 콘크리트와 석축으로 덮인 인공 해안으로 변해버렸다. 자연 백사장과 사구가 온전히 보존된 곳을 찾기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집이 사라졌으니, 그곳에 살던 생명들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해안사구 곤충 복원은 단순히 곤충 한 종을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잃어버린 인천 연안 생태계의 복원력을 되찾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천은 지금부터라도 다음의 세 가지를 진지하게 실행해야 한다.

첫째, 훼손 전 과거 서식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다. 과거 닻무늬길앞잡이가 번성했던 곳의 모래입도, 염분, 배후 식생 등을 철저히 분석해 서식환경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대체서식지의 적극적 발굴이다. 인공화율이 극심한 내륙해안 대신, 자연해안이 잘 보존된 인근 도서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백령도, 덕적도, 굴업도 등을 대상으로 정밀 생태 조사를 진행해 해안 곤충들이 정착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노력이다. 행정기관, 연구자,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해안 생태계를 관리해야 한다.

더불어 ESG 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기업의 참여가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이러한 협력 체계 속에서 서식지 복원과 인공증식 개체방사 등이 이뤄질 때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건강한 백사장은 모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모래 틈바구니에서 생동하는 수많은 생명이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바다가 완성된다. 인천의 해변을 다시 날아오르는 닻무늬길앞잡이 모습을 꿈꿔본다. 굳건한 거버넌스와 실천 의지가 동반된다면, 잃어버린 인천의 건강한 연안 생태계를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배양섭 인천대학교 매개체감염병연구소 교수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