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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빠르기만 한 AI시대, 평범·소박한 것의 가치 알리고 싶어

정보통신(IT)과 전기 협력, 일본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CPTPP) 가입 등을 말했다. 그러곤 “2년 후면 (협회 설립) 60주년이에요. 한·일이 협력하면 성과를 낼 게 많아요. 앞으로 그쪽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라고...

빠르기만 한 AI시대, 평범·소박한 것의 가치 알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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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보보담’ 발행 15년…구자열 LS그룹 의장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LS용산타워에서 '보보담' 60호 발간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날 100호도 꿈꿨다. 김상선 기자

전북 고창은 대지주 인촌 김성수도, 마름의 아들 출신 미당 서정주도 낳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그러면서도 논쟁적 인물들이다. 이 둘을 이렇게 기술한 잡지가 있다.

“옛사람들의 공과 과를 두부 자르듯이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며, 우리는 그들이 살던 시대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차분히 곱씹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냉철한 비판과 함께 그들의 어떤 모습들을 환대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역사는 조금 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넌지시 생각하게 하는 이 잡지를 두고 누군가 “장소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함께 건넨다”고 했다. 바로 LS네트웍스에서 발행하는 무가(無價)의 계간지 ‘보보담(步步譚)’이다. ‘함께 걸으면서 나누는 이야기’이라는데 말씀 담(談)이 아닌 클 담(譚)을 쓴다. 땅·산·물·사람 등의 서사(敍事)를 전해서일 것이다.

'보보담' 60호. 전북 고창을 탐구하는데 봄날의 선운사와 젊은 날의 서정주가 담겼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30일 고창 얘기를 담은 보보담 60호가 나왔다. 2011년부터였으니 15년이다. 길다면 긴 시간 내내 편집주간은 한 명, 구자열(73) LS그룹 이사회 의장이다. 범LG가의 일원(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석 달에 두 번, 서너 시간에 달하는 편집회의를 주재하고 편집노트를 쓴다.

그런 그를 지난달 29일 중앙SUNDAY가 만났다.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100호를 말하다가 “그때까지 살아있을까”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보보담에 대한 각별함이 전해졌다. “나는 계속해서 우리나라 숨은 곳, 열심히 산 사람들 얘기를 쓰려고 해요. 후세대가 읽고 ‘아 우리 선배들이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왔구나’라고 공부시키는 쪽으로 할까 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알프스산맥 완주…음·미·체에 능한 덕후

Q : 15년의 여정입니다.

A :

“대학 다닐 때 우리 민족의 얼을 주제로 한 ‘뿌리 깊은 나무’를 참 좋아해 열심히 다 읽었어요. 해외 생활을 할 때 ‘샘이 깊은 물’도 나왔지요. 출판사들의 의도는 좋았는데 상업성 때문에 전부 폐간됐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산인데, 그런 걸 기록으로 남겨두는 작업을 내가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구 의장은 50호 편집노트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한창기 선생이 펴낸 『민중자서전』을 떠올렸다. “그대로 평범한 민중들의 구술을 받아적어서 스무 권으로 단정하게 묶은 책들이다. 이 총서로 인해 우리는 당시의 조선목수·보부상·농부·뱃사공·옹기장이, 가야금 명인과 북 치는 고수들이 지닌 삶의 생생한 기억을 지닐 수 있게 됐다”고 했고 보보담이 “(독자들의) 기억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썼다.

실제 보보담은 15년간 국내외 주요 지명 270곳, 국가문화유산 125건을 다루었다. 300여 명의 필자가 참여했고 80여 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한량과 예기(藝妓) 얘기도 나온다.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유배·표류 등의 주제도 다뤘다. 인문 지리지란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Q : 꿈을 이루셨나요.

A :

“방방곡곡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평범하고 소박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성취와 자부심을 느껴요. 여전히 할 게 많아요. 주로 지방에 가는데 1년에 한 번은 주제로 하자고 했어요. 내년엔 풍류를 할 겁니다. 이런 역할은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5000부를 찍는데 배달비도 부담한다). 회사가 적자 날 때도 했어요. 우리 책은 오래 읽게 돼 있어요. 사진을 많이 넣고 종이의 질도 따져요. 아날로그죠.”

Q : 미국·일본·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일했으니 동시대인 중 가장 글로벌한 분 중 한 분일 겁니다. 그런데도 지역을 말하고 얼을 말하고 과거를 말하십니다.

A :

“구씨 중 이런 쪽이 별로 없는데(웃음), 내가 우리 어머니 쪽인 것 같아요. 음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고 그래요. 사실 내가 대학 다닐 땐 사물놀이 같은 게 없었어요. 우리도 먹고살게 되면서 늦었지만, 우리 걸 찾게 되는 거지요. K팝·K컬처·K푸드·K뷰티 잘 나가는데 우리 걸 베이스로 새로운 걸 만들어야 우리 고유의 K컬처가 되지 않겠어요? 뿌리가 있어야 해요.”

Q : 창간사에서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이란 말을 하셨습니다.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시나요.

A :

“유효하죠. AI 시대라 워낙 변화가 빠른데, 빠르게 가다가도 한번 뒤돌아봐야 하잖아요. 사실 경영은 매니지먼트이고 사람을 다루는 거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잡지를 통해 ‘아 사회에서 나랑 이렇게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있구나’ 자꾸 느끼면 인간다워질 것 같아요.”

Q : 최근 20~30대 독자도 늘고 있다던데요.

A :

“젊은 세대가 우리 역사를 알고, 지역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얘기도 들으면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해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도록 바꾸고도 있어요.”

그가 보보담을 시작했을 때 경영인으로서 대단히 바쁜 시기였다. 북미 최대 전선회사인 미국 수페리어에식스를 인수한 지 3년 후였고 창간 2년 후엔 LS그룹 회장직을 맡아 LS그룹의 오늘을 가능케 한 기반을 닦았다. 국가지식재산위원장, 한국무역협회장 등도 했다.

Q : 보보담까지 할 열정이 있으셨네요.

A :

“일이 없을 때 일을 만드는 게 아니고 일이 있을 때 일을 만드는 거예요. 항상 일을 하면서도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지, 그래야 나도 하루하루 뭔가 변화가 있잖아요.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거를 하나하나 하기 시작한 거죠.”

그저 하나하나는 아니다. 매달 음악 공연을 여는데 클래식은 100회 가까이 됐다. 얼마 전 재즈를 시작했고 국악으로도 넓히고 있다. 그는 “(국악) 창작 쪽인데 재즈와 융합해 새로운 걸 만드는 시도를 하려고 해요”라고 했다.

Q : 돈 버는 회장님이 돈 버는 사업에 더 시간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A :

“제일 좋은 CEO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요? 머리가 좋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경영도 만기친람하면 안 돼요. 중요한 목표를 정해놓고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하며 하는 컬처가 중요하지, 내가 노상 다 뛴다고 되나요? 돈만 많다고 되는 건 아니고, 돈은 써야 들어와요. 또 기업인으로, 가장으로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나요?”

Q : 기업에도 도움이 되나요.

A :

“그럼요. B2B 기업인 LS가 이런 활동도 하면서, 브랜드를 알리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죠.”

Q : 임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

“맨 처음에 시작할 때는 전부 다 반대예요. 일이 많이 생기고 돈 쓴다고. 그런 거 자꾸 연연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원래 일은.”

구 의장은 음·미·체에 모두 능하다. 2002년 유럽 알프스산맥의 650㎞ 구간을 7박8일간 완주하는 ‘트랜스 알프스 챌린지’를 동양인 최초로 완주했을 정도로 자전거 덕후이고(대한자전거연맹 명예회장), 예술의전당 이사회 의장이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의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제일 좋은 CEO는 머리 좋고 게으른 사람

Q : 이 중 가장 심장이 놓인 건 어떤 일인가요.

A :

“가슴 뛰지 않은 일이 없어요. 이들이 일면 각각 구분돼 보이지만 결국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 유기적으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음악회만 해도,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만나 음악 얘기도, 비즈니스 얘기도 하잖아요. 결국 사람과의 만남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한테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 내가 좀 호기심이 많죠. 새로운 걸 추구해요. 우리가 (2003년 LG로부터) 계열분리할 때 도전과 혁신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혁신이란 게 결국 변화를 좇아가는 거예요. 1일 1신(新)이죠.”

Q : 여느 재계 분들과 다릅니다.

A :

“갇힌 울타리에서 사는 거는 싫어하고 너무 유유상종하다 보면 시각이 좁아지잖아요. 워낙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요. 사람은 사람과 엉켜서 살아야 해요.”

그는 올 2월 한일경제인협회장이 됐다. 정보통신(IT)과 전기 협력, 일본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CPTPP) 가입 등을 말했다. 그러곤 “2년 후면 (협회 설립) 60주년이에요. 한·일이 협력하면 성과를 낼 게 많아요. 앞으로 그쪽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기업인인 그에게 기업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다진 기반으로 LS그룹이 글로벌 전력망 투자·AI 인프라 붐이라는 메가트렌드를 타고 최근 3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Q : 해저케이블의 경우 몇 년 일감을 다 수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룹 회장 때 뿌렸던 씨앗이 발아한 건데, 먼저 선점할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A :

“그동안 국내만 봐와서 해외로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고생 많이 했어요. (해외에서) 레퍼런스가 없으면 절대 안 사주는데 한전에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는 게 한전에 납품했다는 게 레퍼런스가 된 거예요. 한전도 그 덕분에 제주-진도 해저케이블 프로젝트를 아주 싸게 계약할 수 있었죠(웃음). 2010년 전후 제주에 공사하는데 태풍이 와서 수업료를 좀 냈어요. 그래도 운이 좋은 거예요. 회사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뿐인데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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