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욱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상근부회장
3살, 5살 손주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그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애들 엄마·아빠가 나누는 대화, 애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럴 때면 어릴 적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애 들을라.”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부모님 세대는 말 한마디, 숨소리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거친 언어가 아이의 무의식에 스며들어 그 아이의 신념과 인생이 될까 두려워했다. 경험으로 체득한 '언어 생태학적 지혜'였다.
그러나 그 지혜는 오늘날 온데간데없다. 특히 국가 지도자급의 입이 문제다. 예전엔 모르고 살았지만 요즘의 공중 방송에 인터넷 방송까지 더하여 거의 생중계다. 일부러 과격하게 말하고 녹화하여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나라의 문제점과 미래를 논한다는 정치지도자와 국회의 모습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상대를 자극하고 깎아내리려는 언사는 이미 도를 넘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가 원로를 폄훼한다. 심지어 교과서에 실릴 만한 국가적 영웅마저 서슴없이 깎아내린다. 정치 현장에서는 상대 정적을 향해 조롱 섞인 별칭을 붙이고, 심지어 히틀러라 부른다. “지랄하네.”, “웃기고 자빠졌네”, “생긴 것부터가…” 차마 어른의 입이라 믿기 힘든 막말과 외모 비하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정말 애들 볼까 걱정된다. 채널 돌리고 인터넷 방송 돌리다가 볼까 두려운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를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따로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시대다. 국회, 정당, 공개적 장소에서 뱉은 정치인의 거친 말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숏폼, 짤, 클립 영상으로 빛의 속도로 복제되어 무제한 확산하며 지워지지 않는다. 본인이 뱉은 오염된 언어를 누군가가, 심지어 우리 아이들이 밤낮으로 무한 재생하며 본다. 한 번 쏘아 올린 말은 소멸하지 않는다. 디지털 공간을 표류하며 끊임없이 노출된다.
그들이 모르는 듯하여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필자의 생각이 아니라 뇌과학자와 행동과학자가 보내는 경고다. 심리학의 '자기지각 이론(Self-Perception Theory)'과 '점화 효과(Priming Effect)'이다. 인간의 뇌, 그중에서도 감정과 무의식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문법상의 '주어'와 '시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을 공격하고 짓밟기 위해 던진 독설과 조롱도 마찬가지다. 그 언어가 품은 정서적 독성과 스트레스 호르몬은 남에게 가기 전에 먼저 자기 뇌에 각인된다. 말을 뱉은 본인의 신경계에 가장 뚜렷하게 새겨진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의 출력을 넘어 내 뇌와 몸으로 입력되는 가장 강력한 행동 신호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처럼, 국회에도 정치인의 독성 언어를 제재할 감시 기구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시청률이 최고점을 찍지 않을까?
그러나 어쩌면 제도보다 더 서늘한 '자연의 법칙'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을 무한히 떠돌던 폭력적인 언어는 결국 당사자에게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의 무의식에 박힌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과 언어 습관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부모가 세상에 흩뿌린 독성 강한 싸움과 모욕의 언어. 그것을 그대로 닮아갈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의 아이들이다. “애 들을라”라는 옛 어른들의 저린 마음을 잊은 채 거친 입으로 세상을 더럽힌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본인이 뱉어낸 말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본인과 사랑하는 자식의 삶을 파괴하는 가장 가혹한 '참교육'이 된다. 이 사실을 하루빨리 직시해야 한다. 자기 가족을 지키는 일이자 국민의 삶을 살피는 기초다.
/박창욱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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