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브랜드는 시장의 언어로 설명돼왔다. 더 좋은 품질, 더 세련된 디자인, 더 강력한 광고 메시지가 파워 브랜드의 핵심이었다.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전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후 위기, 팬데믹, 전쟁과 인권 문제 같은 글로벌 이슈가 일상이 된 시대에 이 전제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의 저자인 김홍탁 크리에이티브 솔루셔니스트와 김예하 연구원. 최기웅 기자
최근 출간된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 브랜드 행동주의)』은 브랜드가 옳은 행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가 돼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기업이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을 넘어 사회적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CSR)을 하는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사업 역량을 활용해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저자인 김홍탁 크리에이티브 솔루셔니스트와 김예하 연구원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브랜드는 더는 중립적 방관적 존재로 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만 구매하지 않고 기업이 무엇을 믿고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함께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저자는 글로벌 브랜드 사례와 광고산업의 변화,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을 함께 짚으며 브랜드 액티비즘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브랜드 전략이라고 짚었다. 이어 브랜드가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실제 필요한 전략들을 제안했다.
다음은 두 저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책에서 ‘브랜드 목표(Brand Goal)에서 브랜드 목적(Brand Purpose)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홍탁
전통적으로 브랜드는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같은 정량적인 성과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문제 해결이나 지속가능성 같은 가치가 브랜드의 핵심 역할이 됐다. CSR이 기업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활동이었다면, 브랜드 액티비즘은 브랜드 자체가 사회문제 해결의 솔루션이 되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기부 중심의 CSR에서 브랜드 솔루션 중심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왜 등장했는가.
김홍탁
기후 위기, 불평등, 인권 문제 같은 글로벌 이슈가 기업 활동과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다는 점이 가장 큰 배경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협업 구조의 변화다. 빌 게이츠 재단이나 유엔 등 기관이 광고회사나 크리에이터들과 협력해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자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브랜드는 신뢰하지 않겠다고 답한 소비자가 70%를 넘는다는 발표도 있었다(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 이제 브랜드는 성공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열매를 나누는 조직, 즉 목적 지향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사회적 목적 지향의 브랜드들이 매출 성과도 좋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브랜드 액티비즘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의 효과를 거둘 경우 기존 대비 저비용임에도 마케팅 효과뿐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기 때문에 ROI(투자대비수익)도 높다. 즉, 여기서 수익은 기존엔 단지 이윤이었지만 이제는 그에 더해 사회를 위한 가치 창출로 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사회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브랜드 액티비즘의 주제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김예하
모든 이슈에 참여하려 하기보다 브랜드가 책임질 수 있는 이슈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브랜드의 가치와 역사, 사업 영역과 연결되는 문제인지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브랜드가 말하는 가치와 기업 내부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결국 정당성, 행동, 일관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췄을 때 소비자들은 그것을 진정성으로 받아들인다.
진정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
김홍탁
진정성의 핵심은 지속성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2018년 인종차별에 항의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정치적 논쟁이 있었지만 브랜드 충성도는 오히려 강화됐다. 나이키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십 년 동안 인권 문제를 꾸준히 다뤄왔기 때문이다. 또 도브는 ‘리얼 뷰티’ 캠페인을 수십 년 동안 이어오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인위적인 미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반대로 진정성이 없는 캠페인은 빠르게 실패한다. 펩시가 시위 현장에서 모델이 경찰에게 음료를 건네며 갈등을 해결하는 광고를 만들었는데,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24시간 만에 광고를 내렸다.
한국 상황에서 기업이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김홍탁
한국 기업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피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일을 해도 조용히 하는 것이 낫다는 문화도 있다. 혹시라도 비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처럼 강력한 브랜드 액티비즘 사례가 아직 많지 않다.
브랜드 액티비즘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려는 기업은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김예하
이슈를 먼저 찾기보다 브랜드의 정신과 비전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브랜드가 무엇을 믿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다음에 이해관계자를 분석하고 조직 내부에서 가치가 공유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리스크를 검토한 뒤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리스크를 완전히 피하려 하기보다 브랜드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나 대응 시나리오를 먼저 준비해야, 만일 있을 수 있는 다른 의견이나 논쟁에 어떤 설명으로 대응할지 원칙을 유지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상호 연계되야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홍탁
브랜드 액티비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먼저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한 뒤 성과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통해 개선하는 순환 구조의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담 부서가 필요하며, 조직 전체를 이끌 수 있는 C레벨 리더십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PwC에는 브랜드 목적과 사회적 가치를 총괄하는 CPO(Chief Purpose Officer, 최고목적책임자) 같은 직책이 있는데, 이런 형태의 리더십이 브랜드 성과와 사회적 임팩트를 조직 차원에서 추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기업의 KPI 역시 단순한 매출이나 성과 지표가 아니라 사회적 임팩트와 브랜드 목적 달성 기준을 포함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직원이 브랜드의 목적과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도록 교육하고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동시에 기업 혼자 움직이기보다 NGO,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브랜드 액티비즘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의 비전과 연결된 새로운 조직 기능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홍탁
예를 들어 마스터카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로 이동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Where to Settle’ 플랫폼을 만들었다. 난민들이 거주지와 생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었다. 이후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경쟁 문제가 발생하자 ‘Where to Start’ 플랫폼을 추가로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 알려주고 지역 비즈니스와 매칭을 추천해 비즈니스 시너지 효과까지를 설계했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데이터 역량을 활용해 난민 정착 문제를 해결한 브랜디드 솔루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례의 핵심은 ‘시의 적절성’과 ‘최적화’이다. 이 사례로 마스터카드는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이 회자됐다.
마스터카드의 ‘Where to Settle’ 캠페인은 전쟁과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선택할 때 실질적인 정보와 금융 접근성을 제공해 자립을 돕는 브랜드 액티비즘 프로젝트다.
한국에서 가능한 브랜드 액티비즘 주제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홍탁
환경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글로벌 어젠다다. 또 한국 사회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와 다양성 문제 같은 이슈도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국내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고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다양성 문제는 이미 우리가 풀어가야 할 중요한 이슈가 됐다.
김예하
더불어 한국 사회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중요한 영역이다. 노인의 빈곤과 고독 문제 같은 영역에서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실제로 기업 성과와 연결되는가.
김홍탁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가 중립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라’고 말하던 시대는 끝났다. 최근 글로벌 광고제 수상작의 90% 이상이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프로젝트다. 이미 마케팅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김예하
브랜드 액티비즘을 이해하려면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체처럼 바라보는 관점이 도움이 된다. 사람에게 ‘선함’이나 ‘진정성’이 매력적인 가치가 되듯이 기업도 사회적 가치와 행동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탑재하면 그것 자체가 브랜드의 중요한 셀링 포인트가 된다. 실제로 사람들은 선한 행동이나 의미 있는 활동을 보면 심리적으로 더 공감하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행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10대 청소년이 사회운동의 상징이 된 것은 단순한 메시 때문이 아니라 무동력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등 행동 자체가 강력한 상징성과 스토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세대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참여 모델을 보여줬다. 이처럼 브랜드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적인 솔루션과 행동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한다’고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동기를 느끼게 된다. 반면 전통적인 CSR 활동은 의미는 있지만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브랜드 액티비즘의 핵심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행동과 스토리를 만드는 데 있다.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행동 항해는 비행기로 인한 탄소 배출을 거부하고, 대서양을 요트로 횡단해 국제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한 상징적 퍼포먼스였다. 이 항해는 기후 위기에 대한 개인의 실천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켜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 책은 공동 저자가 부자 관계라는 점도 흥미롭다. 각자 저술작업에서 어떤 역할과 공헌을 했는가.
김홍탁
처음 『브랜드 액티비즘』 책을 출판하기로 한 것은 2023년이었다. 그때 책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이유로 시간이 지나 출간이 늦어지면서 오히려 결과적으로 더 좋은 기회가 됐다. 그사이에 아들이 연구자로서 참여하게 되면서 책에 학문적인 부분이 더 보강됐기 때문이다.
김예하
특히 필립 코틀러 같은 마케팅 학자들이 브랜드와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설명해왔는지, 정의와 브랜드의 역할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지를 정리하면서 이론적 기반을 채웠다. 한국에서는 아직 브랜드 액티비즘이라는 개념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례와 이론을 함께 묶어 하나의 체계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홍탁
국내외 광고계에서 활동해온 크리에이티브 솔루셔니스트로, 제일기획에서 삼성전자·현대자동차그룹 등의 브랜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칸 라이언즈, 원쇼, D&AD 등 주요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하고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25년 원쇼 SDGs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의 파운더이자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파울러스의 CCO로, 기업 브랜딩과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개발, 강연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
김예하
영국계 광고회사 BBH에서 상하이와 싱가포르 근무 시 유니세프와 삼성의 CSR·지속가능성 캠페인을 담당했다. 시러큐스대학교 맥스웰 정치행정대학원에서 공공외교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노스웨스턴대학교 ‘비영리 및 사회적 임팩트를 위한 네트워크’ 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데이터 기반 아웃리치와 복지 서비스 접근 격차 해소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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