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저이 용꿈전 홍보 이미지
오랜 세월 고택의 처마 아래 머물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누군가는 과거 급제를 꿈꾸고, 누군가는 자손의 탄생을 소망했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해학과 풍자로 되살아나 관객들을 만난다.
봉화군(군수 최기영)은 오는 11월 7일과 8일 오후 2시, 법전면 기헌고택 앞마당에서 전통연희 마당극 '버저이 용꿈전'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전통문화 재현을 넘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기록과 설화를 현대적인 공연예술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실제 전해지는 문헌을 바탕으로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공연 콘텐츠로 제작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봉화군 국가유산 활용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 용이 승천한다는 마을, 그곳에 깃든 오래된 이야기
공연이 펼쳐지는 법전마을의 옛 이름은 '버저이'다. 예부터 이 마을은 태백산을 여의주 삼아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국인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의 명당으로 전해져 왔다. 문산과 필봉을 갖추고 태극천에 정기가 모여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풍수적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히 과거시험 급제자를 여럿 배출한 마을로 알려지면서 '급제마을'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처럼 법전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지리적 전설을 넘어 학문과 출세, 가문의 번영을 염원했던 선조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이번 마당극은 바로 이러한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 용꿈 하나에 담긴 소망… 과거 급제와 득남을 둘러싼 해학
'버저이 용꿈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전해 내려오는 '용꿈 매매문서'와 태백산신에게 올린 '급제 감사 제문(祭文)'을 창작의 바탕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용꿈 매매문서에 등장하는 여종 신 씨가 청룡과 황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면서 시작된다. 그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지자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강문과 아들을 얻기를 바라는 신혼부부가 서로 꿈을 사겠다고 나선다.
같은 꿈을 두고도 저마다 바라는 미래가 다른 사람들. 과거 급제를 향한 열망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소망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운 갈등과 웃음을 만들어낸다. 공연은 이러한 상황을 전통연희 특유의 신명과 해학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꿈을 사고파는 독특한 소재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문화와 가치관, 신분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오래된 기록 속 인물과 사건이 관객의 눈앞에서 생생한 이야기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문화유산 관람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 200년 넘는 고택, 전시 공간을 넘어 살아 있는 무대로
마당극의 배경이 되는 기헌고택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전통 가옥이다. 1780년경 첨지중추부사 강완이 건립하기 시작해 손자인 기헌 강두환(1781~1854)이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고택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다. 한 가문의 생활과 예절, 음식문화와 정신적 전통이 세대를 거쳐 축적된 역사적 공간이다.
현재도 대를 이어 전승되는 내림음식과 한옥 숙박 체험 등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전통생활문화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고택의 앞마당이 무대가 된다. 관객들은 별도로 꾸며진 공연장이 아닌 실제 역사적 공간에서 마당극을 감상하며 법전마을과 기헌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오래된 건축물과 살아 있는 공연예술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셈이다.
■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 보존에서 활용으로
이번 공연은 '2026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가운데 고택·종갓집 활용사업의 하나로 추진된다. 세부 프로그램인 '기헌고택 잔칫날, 풍악을 울려라!'의 중심 행사로 마련됐다.
그동안 국가유산 정책이 문화재의 원형 보존과 관리에 무게를 두었다면, 최근에는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직접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저이 용꿈전'은 봉화가 보유한 역사적 자산을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지역에 전해지는 실제 문헌과 설화를 공연으로 연결한 방식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봉화만의 문화관광 경쟁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공연 운영과 관람객 참여 확대, 지역 숙박·음식·체험 프로그램과의 연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이야기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그 방문이 다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 최기영 군수 "지역의 이야기를 특색 있는 문화관광 자원으로"
최기영 봉화군수는 "법전마을과 기헌고택에 깃든 이야기를 신명 나는 마당극으로 되살려 군민과 방문객이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봉화가 간직한 다양한 국가유산과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특색 있는 문화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고택은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축적된 역사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화유산은 비로소 사람들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온다. 봉화의 경쟁력은 새로운 관광시설을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에만 있지 않다. 이미 간직한 역사와 이야기에 얼마나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느냐에도 달려 있다. 오는 11월 기헌고택 앞마당에서 펼쳐질 '버저이 용꿈전'이 봉화의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의 문화로 이어주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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