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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본능에 충실한 인도인의 세계관이 주는 가르침

유민호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본능에 충실한 인도인의 세계관이 주는 가르침

문명의 원점, 문화의 접점, 인류의 초점 I 특별판

인류의 요람, 역사의 어머니 인도⑤

힌두 경전 벽화만 봐도 남녀 구별없이 자유로운 문화 엿보여

남자가 부인을 육체·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중화권과 대조적

광화문 정문의 수호 동물 해치. 공손하고도 불평불만이 없는 침묵 속 절대 충신 같은 이미지다. 사진은 복원공사를 마치고 공개되는 광화문 앞 월대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2023년 10월 해치 모습. 강정현 중앙일보 기자

도처에 인공지능(AI) 얘기다. 다만, 활용법과 관련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어떤 언어로 질문하는지에 따라 답도 달라진다. 미묘한 차이도 있지만, 전혀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AI 답안도 있아. AI 자체가 질문자의 의도와 성향에 맞춰진 이른바 사이코 팬시(Sycophancy) 현상도 있지만, 언어에 따라 답도 달라진다.

AI 답안은 서버 속에 저장된 방대한 데이터에 기초한 것이다. 초대형 디지털 백과사전 속에서 재빨리 해답을 찾아내는 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글로 물으면 먼저 한글로 된 백과사전이 답안의 근거가 된다. 모자라는 부분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에서 갖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질문 언어의 데이터가 우선이다. 따라서 질문 언어권의 정보와 논리 그리고 분위기가 답으로 제시된다.

AI 답변이 같은 언어권 내 상식이자 정보라는 점에서 긍정적 부분도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글로벌 시대다. 자국만이 아닌 타국에서의 정보나 상황에 대한 ‘비교 평가’가 필요하다. 자국 언어와 정보에만 빠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셈이다. 대표적인 곳이 독재국가 중국이다. 중국어로 질문을 던질 경우 중국 정부가 인정한 정보·논리·가치가 답안 전체에 투영된다. 공산당 정보는 아예 처음부터 답안을 규격화하고 반중국적 의견은 추방하도록 설계돼 있다.

‘인민의 영수(領首)’ 시진핑을 예로 들어보자. 불만이나 부정적 질문은 안 된다. 아예 처음부터 부정적 질문 자체를 안 받거나 시종일관 시진핑 용비어천가로만 구성된 AI다. 중국 AI 성능이 높다고 말하지만, 잘해야 자연과학 또는 형이하학 분야에서나 통할 얘기다. 정치는 물론 철학·윤리·가치에 기초한 형이상학 관점에서는 멀고도 먼 미래다. 일당독재국가 중국은 시진핑을 국가와 동일시한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기업가나 스포츠 선수도 시진핑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어딘가로 사라진다. 연예인조차 인기가 많아질 경우 시진핑의 적이 된다. 연예인의 생각이나 언행 전부 시진핑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만 한다. AI는 그 같은 국가 구도와 사회 구조를 지키는 수단일 뿐이다. 중국어로 질문을 던지거나 중국발 정보에 따를 경우 십중팔구 시진핑, 나아가 중국을 위한 도구나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 AI 상황은 어떨까? 중국보다야 자유롭지만, 특정 분야는 중국과 오십보백보다. 한국어로 나타난 역사나 문화 관련 정보가 대표적이다. 시진핑처럼 개인숭배까지는 아니지만, 국가 차원의 ‘대한민국 만세’ 세계관이 한국어 AI 세계의 대세다. 바로 국뽕이다. 역사·문화 관련 질문을 한국어로 던지면 ‘한국 넘버 1’이 차고 넘친다. 영광스러운 한국 역사가 전 세계 문명·문화사의 중심이자 전 세계가 한국 노래와 춤에 빠져 있다는 착각이 한글 AI 답안 속에 녹아있다.

한국은 세계 10위 무역·경제권의 나라다. 역사는 물론 사회 문화적 국가 위상도 세계 10위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결국은 10위권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아무리 욕하고 저주한다고 해도 미국의 위상은 글로벌 절대 1강이다. 그러나 AI 한글 답안을 보면 전혀 다른 평가도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상 하나만 봐도 이미 거쳐 간 일본,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얘기는 쏙 빼고, 아카데미 전체가 마치 한국 전용물인 것처럼 답한다. 고대 역사 관련 질문을 해도 마치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 일본에 전수해 준 ‘찬란한 문명·문화 대국’으로 묘사된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AI 답안의 수준은 사용자의 경험·지식·판단 그리고 지혜에 달려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닫혀 있을 경우 외눈박이 AI 답변이 나타난다.

베이징 천안문의 사자 수호신은 전부 입을 열고, 지구형 상징물을 발톱으로 장악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안에 위치한 사자상. [중앙포토]

AI 답변도 언어·사고에 따라 제각각

독이 그러하듯 제대로 잘 쓰면 약이 될 수도 있다. AI를 어떤 방법이나 자세로 대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기본적이지만, 확인·검증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필자의 경우지만, 제대로 된 답 하나를 얻으려면 수많은 보충 질문을 이어 나가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AI 답안 자체를 의심하면서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만 한다. 콜럼버스 아메리카대륙 발견 시기와 같은 팩트 체크에서부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과 가톨릭 확산이란 거시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묻고 또 묻고 비교하면서 최종 답으로 나아가야 한다.

질문에 앞서 AI 답안에 관한 전제조건을 미리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 공산당의 현재 상황과 영향력에 관해 묻는다고 치자. 수많은 조건을 달아야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중국발 프로파간다 정보는 빼라, 1945년 이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과 유럽 최고 대학의 책이나 논문을 중심으로 하라, 중국 밖 중국인의 어용 책도 전부 배제하라, 다양성에 기초한 21세기 정치적 올바름(PC)에 따른 정보는 배제하라, 고대 그리스 철학에 기초한 평가나 분석을 중심으로 하라와 같은 조건들이 대표적 본보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조건을 달 경우 한층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정확 객관’이 뭔지 되묻는 경우도 있을 듯하다. 아이비리그 논문이 정확 객관이라 말할 근거가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필자의 답변이지만, 일방적·폐쇄적·이념적이 아닐 경우 정확 객관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정확 객관 100%는 불가능하지만, 일방 폐쇄 이념에 비해 모두에게 수용될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AI시대 생존법이지만, 땀으로 밴 현장 체험이 중요하다. 크리스털 인터넷이나 플라스틱 미인이 아닌, 현장과 사람을 통한 오감 교육과 체험이 AI 시대 필수 덕목에 해당한다. 글을 쓰는 동안 접한 일본발 뉴스지만, 앞으로 5년 안에 대학 졸업 여부가 AI 시대 신입사원 조건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대학을 안 나와도 나름대로 경험과 공부를 할 경우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과거 인류가 그러했듯 책상머리에서 벗어난 체험과 지식이 AI 시대 성공 요소가 될 수 있다.

도쿄박물관에 조선 석상이 전시된 이유

최근 도쿄국립박물관에 다녀왔다. 연회비 2500엔짜리 회원카드를 통해 4일 연속 박물관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대형 박물관의 묘미지만, 상설 전시관 내 유물이나 작품의 변화가 흥미롭다. 상설로서의 큰 틀은 그대로지만, 각론 부분의 교체 전시물도 적지 않다. 자주 가서 자세히 보면 바뀐 전시물을 찾아낼 수 있다. 이번 박물관 방문 중 특히 주목한 것은 박물관 야외 출입구 오른쪽에 들어선 조선시대 석상이다. 조선 후기시대 문관(文官) 두 쌍, 양(羊) 한 쌍이 국립박물관 잔디밭에 들어서 있다. 우에노에 갈 때마다 마주한 석상들이지만, 볼 때마다 든 의문이 있었다. 평양과 강원도에서 발굴한 조선 석상이 왜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박물관 첫 관문에 들어서 있을까?

흔히들 생각하듯 일본 제국주의, 식민주의, 군국주의의 만행과 야욕으로 연결해 풀면 간단할 것이다. 한반도 정기를 끊으려는 일본 말뚝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박혀 있다는 얘기도 추가하면 한층 더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한반도 내에서나 통하는 ‘우리끼리 애국’에 불과하다. 밖으로 나가 설명하고 설득할 만한 논리로는 약하다. 세계에 통할 ‘정확 객관’으로서의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인류 문명·문화 비교는 그 같은 정확 객관을 위한 기본 조건이자 필수 요소다. 한글이 아닌, 수많은 조건을 단 영어 질문을 통한 AI 답안도 선택안 중 하나다. 두 쌍의 문관과 한 쌍의 양은 어떤 경로를 통해 한반도에 정착했는지, 어떤 의미로 활용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면 ‘왜 우에노에?’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얻어낼 수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조선 문신 수호신. 절대복종을 의미하듯, 미소와 함께 입을 다물고 두 손을 모은 모습이다. 송나라 영향으로 1200년간 한반도 무덤을 지킨 수호신이다.

문관 조각상은 원래 조상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으로 활용됐다. 원조로 올라가면 기원전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올라간다. 이후 북방 유목민을 거쳐 당나라로 흡수된 뒤 신라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형상을 좋아한다. 목재·상아·금속·돌·바위를 이용해 크고 작은 형상을 만들어 주변을 장식했다. 큰 석상을 만들어 왕의 권위나 악을 쫓는 수호신으로 활용한다. 크면 클수록 세속적·영적 파워도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중국발 유교는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쇄국 신앙이다. 유목민과 달리, 대대손손 조상의 땅과 무덤을 지켜야만 하는 ‘홈 타운 퍼스트’ 유전자가 중국 세계관의 기본이다. 지배층이 만든 중국 가치관은 이후 한반도까지 밀려와 뿌리를 내린다. 유교 지배층은 사람들을 한 장소에 정주시킨 뒤 세금과 군역 의무를 부과한다. 집에서 벗어날 경우 3대 멸족이다.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황제는 정주민 조상을 위한 수호신도 파견한다. 무(武)에 기초한 유목민 수호신을 흉내 낸 중국식 조상묘 장식무다. 유목민 수호신은 단 하나로 구성된다. 중국 유교는 문무(文武) 한 쌍 수호신이다. 물론, 문이 무를 통제하는 구도다. 무덤 정면을 보면서 문관은 오른쪽, 무관은 왼쪽에 세워진다. 가죽옷과 무기를 든 유목민 석상과 달리 중국판 문관은 붓과 종이를 든 한족 관료의 모습으로 장식된다. 왼쪽의 칼을 든 무관도 한족 복장으로 무장해 정주민을 노려본다. 문신, 무신 한 쌍은 조상을 지키는 관료이자, 세금과 군역을 죽은 조상에게까지 징수하려는 감시 체제라고 볼 수 있다. 통일 신라는 당나라의 문관, 무관 석상을 직수입한다. 우에노 조선 석상은 통일 신라 이후 1000여 년 역사의 흔적이자 현장이다.

‘절대복종’ 조선 주자학의 원조 중국

우에노 조선 문관 석상들을 보면 전부 입을 다물고 있다. 무관은 아예 없다. 7세기 당나라의 경우 문·무 한 쌍이다. 문관은 입을 다물고, 무관은 입을 열고 있다. 그러나 10세기 송나라로 접어들면서 무관은 아예 사라지고 문관만 한 쌍 배치된다. 둘 다 입을 다문 상태다. 우에노 조선 문관들은 송나라 영향권 석상이다. 무관은 아예 사라지고, 문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한반도의 무관 경시는 1000년 전부터 시작된 송나라발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입을 다문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필자가 보면 절대복종의 상징으로 와 닿는다. ‘입 닥치고 상명하복’이 침묵 속 문관의 자세다. 황제의 언행, 나아가 지배층의 생각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절대복종’ 체제다.

잘 알려져 있듯 조선 주자학의 원조는 송나라에 있다. 입 닥치고 상명하복은 송나라와 조선의 기본 질서 체계다. 송나라는 군위신강, 장유유서와 같은 삼강오륜 유교 질서 생활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송은 이후 몽골에 정복된다. 반면 소중화 조선은 송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상명하복 절대복종’ 주자학 전통을 500년 이상 유지해 나간다.

인도 힌두교 신들을 관찰하면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입의 모양이다. 입을 열고 있는지, 닫고 있는지에 주목했다. 신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격한 감정을 표시할 때는 입을 열고 수행이나 기도를 할 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형상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시바(Shiva)는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힌두교 최고의 신이다. 부인인 칼리(Kali)가 화를 못 이겨 주변 모두를 살해하는 ‘피의 학살’이 벌어진 때가 있다. 시바는 칼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부인의 발아래로 가서 희생물이 되길 자청한다. 힌두교 사원 어디에 가든 볼 수 있는 파괴(칼리)와 창조(시바)를 상징하는 벽화다.

자세히 관찰하길 바란다. 파괴자 칼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도 내놓은 무서운 얼굴로 묘사된다. 반면 창조주 시바는 두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문 평화로운 상태로 표현된다. 절대복종 상명하복 유교 문화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가 힌두교 인도다. 침묵 속 문관 수호신을 가진 조선이나 중국 세계관으로 보면 ‘인도=무질서 대혼란 카오스’로 보일 것이다. 감히 여자가 남편을 죽일 듯 무시하고, 남자를 여자의 발아래에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는 조선과 중국을 어떻게 볼까? ‘문관 침묵 주자학=강요된 노예 이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부유별이란 덕목을 만들어 남자가 부인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배하는 곳이 중화권 문화의 특징이다. 인도는 화가 날 경우 남편조차 예외가 될 수 없는 인간 본능의 땅이다.

부인 칼리가 남편 시바를 짓밟는 힌두교 경전 벽화. 인도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입을 벌려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서울에 갈 때마다 들르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광화문 바로 앞에 좌우로 설치된 해치다. 그럴듯한 해설을 달고 있지만, 크게 보면 메소포타미아에서 전래된 사자 상징물로 연결할 수 있다. 21세기 풍경과 달리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사자들로 채워진 동물의 왕국이었다. 맹수 최고봉 사자를 제압하는 것은 성(聖)과 속(俗)을 아우르는 파워의 출발점이었다. 사자를 활로 쏴 죽이는 힘의 권력도 있지만, 아예 사자에 올라타 맹수를 통제한 종교적 권위도 있었다. 이후 지구를 돌고 돌아 나타난 것이 광화문 해치라고 보면 된다. 한반도 자생 수호신이라고 말하지만, 국뽕 문명관일 뿐 실제는 인류 공통 문명·문화로서의 수호 동물이다. 사자만이 아닌 코끼리, 독수리, 개, 용, 심지어 닭조차 메소포타미아 사자의 아류로 활용된다. 해치는 사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조선인이 상상한 수호 동물이다.

침묵의 세계관은 석상에도 그대로 반영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간다. 상명하복 절대복종 침묵의 세계는 인간만이 아닌 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광화문 해치 한 쌍을 보면서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먼저 입 모양이다. 둘 다 침묵·순종형이다. 문·관 수호신이 그러하듯 입 닥치고 광화문을 지키고 있다. 입을 다문 해치는 내부 규율만이 아닌, 성 밖 백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입 닥치고 궁궐 안 명령에 무조건 따라오라는 얘기다.

메소포타미아, 심지어 중국 천안문에서도 볼 수 있는 사자형 수호신을 자세히 살피길 바란다. 한 쌍 모두 전부 입을 열고 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메소포타미아 사자상은 정복의 상징일 듯하다. 이렇게 강한 동물을 권력자가 지배·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과시로서의 입을 벌린 사자상이다. 중국 천안문은 어떨까? 성 밖 백성을 포함한 외부 세력에 대한 힘의 시위이자 경고다. 황제의 말을 안 들을 경우 성난 사자처럼 전부 물어뜯겠다는 의미에서의 포효하는 사자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광화문 해치를 보면 ‘침묵=종’으로서의 조선의 질서가 너무도 선명하게 와 닿는다.

현재 한국 외교를 보면 두 개의 상반된 풍경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기묘할 정도로 신중하고, 일본 심지어 미국에 대해서는 너무도 용감무쌍하다. 중국 배가 서해를 넘나들고 철골 부유물이 확장되는데도 말 한마디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는 ‘자존·자립·자주’란 단어를 남발하면서 ‘이순신, 안중근’ 코스튬 플레이 경쟁으로 일관한다. 반도체 관련 정보가 중국에 통째로 넘어가도 반발 하나 없다. 반면 미국 자본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는 정부 전체가 나서 벌떼처럼 공격한다. 웃기는 것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갔는데도 베이징에 항의 한번 못한다는 점이다. 광화문 앞 해치를 보면 그 같은 ‘한심한 이중잣대’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을지 추측할 수 있다.

둘째로 주목할 부분은 허전한 공간이다. 천안문 사자상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해치는 그냥 앉은 모습으로 광화문 앞 좌·우를 지키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로마, 심지어 일본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사자, 용, 독수리, 개 구별 없이 수호 동물 발아래에 특별한 형상 하나가 ‘반드시’ 들어서 있다. 둥근 볼 모양의 상징물이다.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대략 지구 모습을 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지구를 지배할 정도의 파워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세상 어디에 가든 특별한 공간을 지키는 수호 동물이라면 반드시 둥근 형상물을 발아래에 두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의 간판에 해당할 해치는 그 같은 지구형 조형물이 없다. 왜일까? 중국을 아버지로 대하는 조선 주자학 논리가 배경에 있다고 보면 된다. ‘감히 아버지 중국처럼, 세상을 지배할 파워를 조선이 가진다는 것 자체가 법도에 어긋난다’라는 식의 ‘침묵 순종’ 코드라고나 할까? 성 밖 백성에게 입 닥치고 따르라고 말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120% 순종하겠다는 결의와 자세가 광화문 해치 한 쌍에 녹아있다.

‘반면교사’가 조선 문신 전시 이유일지도

한반도와 인도의 접점은 삼국시대, 나아가 통일신라를 경계로 끝난다. 불교를 공부하고 불경을 얻기 위해 당나라를 넘어 천축(天竺) 인도와 만났지만, 대략 8세기 이후 양측의 관계는 두절된다. 결국 인도 제로 상태에서 중국만이 한반도 문명·문화의 기준이자 가치가 된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인도가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도 ‘인도 단절, 중국 전부’라는 지난 1200여 년 역사 공백에 있을 듯하다. 칼리의 분노를 보면서 감히 남편을 죽이려는 하극상 만행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1200여 년 중국 세계관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도인은 화가 극단에 치밀 경우 가족이든 부부든 상관없이 공격할 수 있다고 본다.

인도인의 세계관은 인간 본능에 기초한 너무도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그러나 주자학 유교 관점으로 보면 입에 꺼내는 것조차 불경스럽다고 멀리할 세계관이다. 인도는 전부 투명하게 열어서 해결점을 찾지만 중국 세계관은 감추고 멀리하면서 조용히 넘어가자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중국 세계관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념할 부분이 있다. 중국식 질서에 맞춰 살아갈 경우 밀려들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과 미래다. 정신적·심리적·물리적 심지어 환경적으로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행기·항공모함 기술을 비롯해 5000만 한국인 개인정보가 전부 유출되든 말든 미소와 함께 ‘셰셰’를 복창하며 따라가는 식이다.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중국은 큰 산과 같은 존재고, 대한민국은 그 옆에 있는 작은 봉우리와 같다”고 말하는 판국이다. 정신적·심리적·육체적·환경적으로 꽁꽁 묶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

AI 시대의 정답은 질문 수준, 심지어 질문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세와 결의도 마찬가지다. 1200년 동안 지배해 온 일방통행 중화 세계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염두에 둔 중국 이해와 접근이 중요하다. 황당한 얘기일 듯하지만, 광화문 해치 개조부터 제안한다. 지구형 볼을 잡고, 좌·우 모두 입을 열어 침입자나 내부의 모순을 언제든 물어뜯을 수 있는 강하고도 분명한 수호 동물로서의 수호 동물이다.

깜박 잊었는데, 일본 국립박물관은 왜 조선의 문관과 양을 잔디밭 한가운데 전시하고 있을까? ‘반면교사 전시’가 답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네 명의 문관 모두 입을 다물고 순한 양처럼 살아가는 곳이 한반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평화라고 해석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침묵 복종만 존재하는 북한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지상천국이 될 듯하다.

유민호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유민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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