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손보 시작으로 26일까지 릴레이 주총
집중투표제 정비·자사주 소각·사외이사 재편 주목
DB손보는 행동주의 펀드와 표 대결 예고
보험업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18일 한화손해보험을 시작으로 본격 막을 올렸다.
올해 주총은 단순한 정례 행사라기보다, 상법 개정 이후 처음 열리는 ‘보험업권의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보험사들은 이번 주총에서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 선임을 넘어, 집중투표제 대응을 위한 정관 정비, 사외이사 재편, 자사주 소각 및 주주환원 강화 등 지배구조 전반을 손질하며 주주 친화 경영의 방향성을 제시할 전망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와 개인주주 영향력 확대, 금융당국의 내부통제·지배구조 강화 기조가 맞물리면서, 올해 보험사 주총은 향후 업권 거버넌스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 한화손보 스타트…20일 ‘손보 빅데이’, 26일까지 릴레이
올해 주요 상장 보험사 주총은 18일 한화손해보험을 시작으로 이어진다.
이어 19일 삼성생명, 20일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이 주총을 연다. 이후 23일 동양생명, 24일 한화생명, 26일 미래에셋생명 순으로 일정이 이어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20일을 전후해 손해보험 대형사들의 안건이 집중되면서, 주주환원과 이사회 개편 관련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주총과 관련, “개정 상법 시행을 앞둔 사실상의 사전 점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상장사 전반에서 3월 셋째 주 주총이 몰려 있는 가운데, 보험사는 자사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자본·내부통제 이슈가 민감한 업종 특성상 상법 개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선명하게 받는 금융업종으로 꼽힌다.
◇ 핵심 화두는 ‘상법 개정 대응’…집중투표제·독립성 강화 전면에
이번 보험사 주총의 공통 분모는 단연 상법 개정 대응이다.
개정 상법은 이사회의 주주충실 의무 강화,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선임 관련 규율 강화, 자사주 소각 원칙 강화 등 기업 지배구조에 직접 영향을 주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이번 주총에서 정관상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거나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제도 변화에 선제 대응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여러 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 주식 수에 선임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기존에는 대주주 중심으로 운영되던 이사회 구성에 소액주주·기관투자자의 실질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장치로 평가된다.
보험사들이 그간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배제해온 만큼, 이번 정관 정비는 단순 문구 수정이 아니라 향후 이사회 권력 구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일부 보험사들은 전자 주주총회 근거 마련,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 개념에 맞춰 정비하는 등, 주총 운영 방식과 이사회 독립성 관련 조항도 손질하는 분위기다.
이는 금융당국이 최근 책무구조도, 내부통제 책임 강화, 소비자보호 중심 경영을 강조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 ‘관료·정책통’ 사외이사 영입 확산…규제 대응형 이사회로 재편
사외이사 인선도 이번 주총의 또 다른 핵심 관전 포인트다.
보험업계는 최근 몇 년간 회계제도(IFRS17), 신지급여력(K-ICS), 내부통제 강화, 판매수수료 개편, 소비자보호 규제 등 굵직한 제도 변화에 직면해 왔다.
그 결과 올해 주총에서는 관료 출신·정책 전문가·자본시장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규제 대응형 이사회’를 강화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삼성화재는 김재신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공정거래·기업규제 분야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전면에 세워, 거버넌스와 준법·리스크관리 체계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대해상은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안 교수는 자본시장연구원장과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장을 지낸 금융정책·자본시장 전문가로, 업계에선 “주주가치와 투자·자본정책 논의를 강화할 인선”으로 본다.
미래에셋생명도 학계 출신 전문가들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며, 이사회 전문성 확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보험사 이사회는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 규제·자본·소비자보호·주주환원까지 모두 다루는 전략 컨트롤타워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주주환원 본격화…보험사 ‘자사주 소각’이 주총 최대 관심사
시장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분야는 역시 주주환원, 그중에서도 자사주 소각이다.
개정 상법 이후 자사주 소각이 사실상 ‘선택’이 아니라 ‘원칙’으로 이동하면서, 보험업계는 금융주 특유의 높은 자사주 보유 비중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핵심 과제가 됐다.
실제로 상장사 전반에서 올해 들어 자사주 소각 결정 공시가 급증했고, 금융업종은 대표적인 수혜·압박 업종으로 꼽힌다.
보험사 중에서는 미래에셋생명이 가장 강한 메시지를 냈다.
회사는 보유 자사주의 약 93%에 해당하는 보통주·전환우선주 6296만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자사주를 정리하는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상법 개정 대응을 넘어 자발적 주주친화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DB손해보험도 전체 발행주식의 약 5.6%에 해당하는 388만여 주를 소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보험업권 내 밸류업 시그널”로 평가한다.
현대해상은 전체 자사주 12.29% 가운데 임직원 성과보상용 3%를 제외한 9.29%를 향후 2년에 걸쳐 소각하는 계획을 주총 안건으로 다룬다.
삼성화재는 이미 중장기적으로 자사주 비중을 2028년까지 5%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방향을 제시해 왔고, 지난해 소각 이후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율 변화와 자회사 편입 이슈까지 맞물리며 시장의 관심을 끌어왔다.
자사주 소각은 단순히 주식 수를 줄이는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발행주식 수 감소로 주당순이익(EPS) 개선, 주당가치 상승, 자본정책의 명확성 제고라는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보험업은 IFRS17·K-ICS 도입 이후 실적의 질과 자본 활용 전략이 더 중요해진 만큼, “얼마를 벌었느냐” 못지않게 “벌어들인 자본을 어떻게 주주와 나누느냐”가 기업가치의 핵심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
◇ DB손보, 얼라인과 표 대결…보험업권 첫 ‘행동주의 시험대’
올해 보험업권 주총에서 가장 뜨거운 개별 이슈는 DB손해보험의 사외이사 선임 표 대결이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DB손보에 주주제안을 내고,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로 민수아 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대표와 최흥범 전 삼정KPMG 파트너를 추천했다.
이에 DB손보는 김소희 전 AIG손해보험 CFO와 이현승 LHS자산운용 회장을 회사 측 후보로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DB손보는 주주제안 후보에 대해 보험·금융 분야 회계·재무·리스크관리·자본배분 측면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사안은 단순한 이사 선임을 넘어, 보험업권에서도 이제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배당 확대’ 수준을 넘어 이사회 구조와 감사기능까지 직접 겨누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선 DB손보 사례가 향후 다른 보험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특히 자사주 비중이 높고 자본 여력이 충분한 보험사일수록, 향후 배당정책·소각정책·이사회 독립성 문제를 둘러싼 외부 주주 압박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 삼성생명·삼성화재, ‘배당 기대’에 주가 반응…보험주 재평가 신호
주총 시즌을 앞두고 보험주 주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8일 장 초반에는 삼성생명이 7%대 급등세를 보였고, 한화생명·미래에셋생명·DB손해보험·현대해상·동양생명 등도 동반 강세를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 보유에 따른 특별배당 기대와 함께, 보험업 전반의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 기대가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기 주가 급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주총에서 각사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자본정책 로드맵을 내놓느냐”라고 본다.
과거에는 보험주의 저평가 원인으로 낮은 배당성향, 복잡한 지배구조,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 자사주 장기 보유 관행이 지목돼 왔다.
하지만 올해 주총에서 이 부분이 구조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면, 보험주는 단순 고배당주를 넘어 ‘밸류업 업종’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주총은 보험사가 단순히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를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할 것인지’를 시장에 약속하는 무대가 됐다”며 “특히 자사주와 이사회 안건은 향후 보험주 밸류에이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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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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