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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이 허용하지 않은 5·18 왜곡, 끝나지 않은 싸움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다.” “헬기사격은 없었다.” “계엄군은 ‘자위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전라도 향한 혐오, 일상에 스민 낙인

1. 왜 광주인가

전두환 판결문 통해 본 역사왜곡

헬기사격 부인·책임 회피 법원 제동

학교 169곳서 왜곡도서 331권 확인

재단, 장서 재심의·관리체계 구축 제안

대법원은 북한군 개입설과 이른바 ‘광수설’, 김대중·북한 합작설 등 5·18민주화운동 왜곡도서인 지만원씨의 ‘북조선 5·18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가 유공자와 유족, 5·18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5·18기념재단 제공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다.” “헬기사격은 없었다.” “계엄군은 ‘자위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극우 사이트에 암약하는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에 버젓이 등장하는 숨 막히는 망언들이다. 회고록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적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자료로서의 가치다. 또 하나는 그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생생한 교훈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역사의 명암 속에서 정치적 프레임을 통해 사실을 음모론으로 교묘하게 비튼 채 왜곡·조작을 확대 재생산하는 ‘땔감’이 되기도 한다. ‘설’을 토대로 한 책들이 서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음모·조작설을 기반으로 책을 쓴 뒤 전직 대통령이란 그럴듯한 ‘포장’을 씌워 극우들의 역사 왜곡 주장으로 재활용되는 구조인 셈이다.

그 간 출판물에 의한 역사왜곡은 수없이 되풀이 돼 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이다. 사법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회 곳곳에서 5·18 왜곡 구조는 여전히 심화되고 있다. 시대의 심판이자 거울인 판결문을 통해 중요한 사료가 되는 전두환씨의 회고록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이유다. 12일 대법원 사법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 2월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 및 출판·배포금지 소송 상고심에서 전씨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회고록의 역사왜곡 표현 삭제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전씨는 지난 2017년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남파된 북한군·공작원·특수요원들이 시위에 참여해 사태를 격화시켰다”,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없었다”, “시민들이 먼저 무장했기 때문에 계엄군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표현하며 학살 책임을 부인했고 헬기사격을 지속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향해서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북한군 개입설과 헬기사격 부인, 계엄군 자위권 발동 주장을 모두 허위로 판단했다. 5·18 관련 형사 확정판결과 검찰 수사 기록, 관련 문서와 관계자 진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결론을 내렸다. 북한군 개입설 등을 인정할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지난해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45년 전 5·18 당시 촬영된 미공개 영상 시사회에 계엄군의 대시민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21일 오전 발포 직전 상황이 담겼다. 영상 속 광주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의 모습이 촬영돼있다. 2025.05.27. leeyj2578@newsis.com

헬기사격 부인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조비오 신부 등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계엄군 헬기사격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계엄군 자위권 발동 주장 역시 배척됐다. 신군부는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시민군 장갑차에 의해 계엄군이 숨졌고 이에 따라 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자위권 발동의 직접적 계기로 지목됐던 권용훈 일병의 사망은 시민군 장갑차 공격이 아닌 계엄군 장갑차가 후진하며 발생한 자체 사고로 확인됐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신군부 측이 수십 년간 주장해온 이른바 ‘자위권 발동론’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조비오 신부에 대한 비방 표현도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됐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며 비방했다. 앞서 조 신부는 1989년 국회 5·18청문회와 이후 수사 과정에서 당시 광주 동구 호남동성당 인근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수 차례 증언했었다. 대법원은 전씨의 표현이 조 신부의 증언을 허위로 몰아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고, 조카인 조영대 신부의 추모감정과 인격권 침해도 인정했다.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전두환씨가가씩 지난 2019년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전 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2019.03.11. photo@newsis.com

전씨의 조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형사재판은 2021년 전씨 사망으로 항소심에서 공소기각됐지만 이번 민사판결을 통해 조 신부 증언의 신빙성과 함께 계엄군 헬기사격 사실은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5·18기념재단(재단)은 판결에 대해 “전두환 회고록이 오히려 5·18 진상규명의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5·18 왜곡 등 가짜 뉴스의 유통을 촉발하는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원은 특히 전씨의 회고록 외에도 북한군 개입설과 폭동설, 이른바 ‘광수’ 주장 등 5·18 왜곡이 담긴 다른 출판물에 대해서도 잇따라 책임을 물어왔다. 지만원씨의 저서 ‘북조선 5·18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 대표적이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4월 해당 도서가 유공자와 유족, 5·18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지씨에게 최대 1천만원씩 총 9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광주고법도 지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 판결을 유지한 바 있다. 이 같은 법원의 허위 또는 명예훼손 판단에도 5·18 왜곡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로의 음모론을 근거로 문제의 책들을 출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이 지난 4월29일 기준 학교도서관 정보관리시스템 ‘독서로’ 검색 결과 전국 17개 시·도 169개 학교 도서관에서는 모두 331권의 5·18 역사왜곡 도서가 소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경기 130권, 서울 66권, 부산 39권 순이었다.

가장 많이 확인된 도서는 김대령씨의 ‘역사로서의 5·18’으로 110권이 소장돼 있었다. 이 책은 5·18 참여자들을 무장봉기 주동 세력으로 규정하고 항쟁 과정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재단의 왜곡도서 목록에 포함됐다. 지만원씨의 ‘12·12와 5·18’과 ‘북조선 5·18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 등도 다수 확인됐다. 이들 도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이른바 ‘광수설’, 김대중·북한 합작설 등을 반복하고 있다. 대한민국교원조합 교과서연구회의 ‘대한민국 사회 교과서’ 역시 전국 36개 학교에서 38권이 소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도서는 5·18 북한군 개입설과 폭동설 등을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단은 이 같은 왜곡 도서의 반복 유통과 학교 현장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도서관별 장서개발정책 명확화 ▲정기적 전문 재심의 체계 마련 ▲교육청과 학교 간 역할 분담 강화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 논의 등 4가지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최경훈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 팀장은 “5·18 왜곡 도서 여부를 판단하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보여줄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며 “재단은 법원 판결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연구자들과 함께 검토하며 왜곡·폄훼 도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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