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용 중부본부장
기후위기 시대, 치수(治水)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수행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백년대계이자 국가적 의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국가하천 관리와 댐 건설이라는 막중한 국가 과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고 뒤집히는 ‘정치적 셈법’의 인질로 전락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추진계획’은 치수정책이 과학적 근거나 현장의 절박함이 아닌 정치 바람에 따라 얼마나 쉽게 오락가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전임 정부가 추진하던 전국 14곳의 기후대응댐 후보지 중 단 5곳만 건설을 확정하고, 경북 김천의 감천댐을 비롯한 다수의 댐 건설을 전면 백지화했다. 감천댐 대신 인근 김천부항댐을 활용하고 하천 정비를 병행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현장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지역주민들의 생존권을 외면한 회피성 처사에 불과하다.
김천을 관통하는 국가하천 감천 유역은 지형 구조상 집중호우에 극도로 취약하다. 서쪽의 백두대간, 남쪽의 수도지맥, 동쪽의 금오지맥 등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탓에 상류 산지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단시간에 감천 본류로 모여든다. 문제는 이렇게 불어난 물이 지나는 감천 연안을 따라 김천시 구도심과 주거 밀집지역이 바짝 붙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류의 유량 증가가 곧바로 도심 침수라는 대재앙으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김천시민들은 수십 년간 반복되는 수해 속에서 피눈물을 흘려왔다. 2002년 태풍 ‘루사’ 당시 감천 범람으로 2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6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막대한 참사를 겪었다. 이후에도 2003년 ‘매미’, 2012년 ‘산바’, 2019년 ‘미탁’, 2023년 ‘카눈’에 이르기까지 폭우가 내릴 때마다 도심 전체가 상습침수 위기에 직면했다. 김천시민들에게 감천댐 건설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장마철마다 밤잠을 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절박한 '생존권적 숙원'이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안한 김천부항댐 최대 활용과 하천 정비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판단이다. 2013년 건설된 김천부항댐은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병행하는 다목적댐으로, 저수용량 자체가 한정되어 있어 기후위기형 극한호우를 홀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구도심 건물들이 하천변에 바짝 붙어 있는 김천의 지형 특성상, 제방을 강제로 높이는 하천 정비는 주변 도심과의 높낮이 차이로 인해 내수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감천 상류에서 유량을 사전에 사수할 ‘도심 홍수 방어 전용댐’ 신설만이 유일하고도 확실한 해법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불과 2년 전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추진하겠다던 계획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명확한 정밀분석 근거도 없이 전면 수정했다. 박근혜 정부, 윤석열 정부, 이재명 정부를 거치는 동안 감천댐 건설은 추진과 재검토, 백지화를 반복하며 널뛰기를 계속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 치수사업의 판이 뒤집히는 동안 정부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 피해와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에게 전가됐다.
물 관리는 정파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는 국정의 기본이다. 극한 호우와 가뭄이 일상화된 기후위기 시대에 치수정책이 정권 따라 오락가락하는 사이, 감천 유역 주민들은 오늘도 먹구름이 끼면 불안에 떨어야 한다. 정부는 일방적인 사업 철회를 철회하고, 김천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감천댐 건설 재검토를 포함한 실효성 있는 방재 대책을 책임 있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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