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인공지능 기업을 겨냥해 미국산 AI 모델의 기술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행위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AI 모델 자체의 지식재산권과 국가안보를 둘러싼 미·중 갈등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최근 정부 부처와 기관에 보낸 메모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세력이 미국의 선도 AI 모델에서 핵심 능력을 빼내는 대규모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 미국의 전문성과 혁신 성과를 이용해 자국 AI 모델 성능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자국 AI 기업들과 협력해 이런 활동을 탐지하고, 방어 체계를 강화하며, 위반 세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쟁점이 된 방식은 ‘모델 증류(Model Distillation)’다. 모델 증류는 더 강력한 AI 모델의 출력 결과를 학습해 작고 저렴한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기술이다. 정상적인 연구와 제품 개발에도 쓰일 수 있지만, 경쟁사의 폐쇄형 AI 모델에 대량으로 질의해 답변을 수집하고 이를 자사 모델 학습에 활용하면 지식재산권 침해 논란이 생긴다. 미국 정부와 일부 AI 기업은 중국 기업들이 이런 방식을 조직적으로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논란은 딥시크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공개하면서 본격화됐다.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 중심의 AI 경쟁 구도를 흔들었고, 이후 미국에서는 이 모델이 미국산 AI 모델의 출력 결과를 활용해 학습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오픈AI(OpenAI)는 지난 2월 미국 의회에 보낸 문서에서 중국이 미국 혁신을 가져와 재포장하는 방식으로 권위주의적 AI를 발전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앤스로픽도 별도 발표에서 딥시크, 문샷AI, 미니맥스 등 중국 기반 AI 연구소들이 클로드(Claude)의 기능을 부정하게 추출하려 했다고 밝혔다. 앤스로픽은 이들이 약 2만4천 개의 허위 계정을 만들고 1천600만 건 이상의 대화를 생성해 자사 모델 학습에 활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모델 증류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접근 제한과 이용 약관을 우회해 경쟁 모델 능력을 대량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미 의회도 입법 대응에 나섰다. 하원에는 ‘미국 AI 모델 절도 억제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미국이 보유한 폐쇄형 AI 모델의 핵심 기술 특징을 외국 적대 세력이 추출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막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법안은 모델 추출 공격자를 식별하고, 필요할 경우 제재나 수출통제 명단 등재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미국이 중국 기업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중국 외교부도 미국의 주장이 근거 없으며 중국 AI 산업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밝혔다. 중국은 과학기술 발전은 협력과 건전한 경쟁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미국이 편견을 버리고 기술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다만 AI 모델 추출을 실제로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다. AI 서비스에는 매일 방대한 질의가 들어오고, 정상적인 이용과 악의적 대량 추출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량 질의 패턴, 우회 계정, 프록시 사용, 특정 유형의 반복 요청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민간 AI 기업 간 정보 공유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AI 보안의 범위가 기존 사이버 공격 방어를 넘어 모델 자체의 보호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기업들은 데이터와 인프라뿐 아니라 모델 출력, API 이용 패턴, 비정상 계정 활동까지 감시해야 한다. AI 경쟁이 빨라질수록 모델 증류와 모델 추출을 둘러싼 기술적·법적 분쟁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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