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이투뉴스/발언대] 바다 위에서, 하늘에서, 그리고 첨단 데이터센터까지, 연료전지는 이제 더 이상 틈새 기술이 아니라 주류 에너지 솔루션으로 도약하고 있다. IMO의 탄소중립 규제, AI 시대가 촉발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 수소항공 인증 체계가 동시에 맞물리며, 글로벌 연료전지 시장은 오랜 기대와 실망의 순환을 끊고 본격적인 성장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문제는 이 변곡점에서 한국이 서 있는 위치다.
올해 말 인도되는 바이킹 리브라호는 세계 최초의 수소연료전지 크루즈선이다. 이러한 대형 선박 동력원 전환의 배경에는 2030년까지 해운 온실가스를 최소 20% 감축하고 저탄소 연료 도입을 의무화한 IMO가 있다. 항공 분야도 마찬가지다. 에어버스는 차세대 무탄소 항공기로 수소 직접 연소 대신 연료전지 방식을 최종 선택했고, 드론과 UAM에서는 이미 군사용을 중심으로 연료전지 상용화가 진행 중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데이터센터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새로운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에 수년의 시간이 필요해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 경쟁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태양광의 간헐성을 보완하면서 착공 후 6개월~1년 내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분산전원은 현재로선 연료전지가 유일하다. 이에 오라클은 블룸에너지와 최대 2.8GW 연료전지 발전 설비 구축에 나섰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수소연료전지를 디젤 비상발전기 대안으로 도입하고 있다. 거대 기술기업들이 연료전지를 사업 확장의 필수 기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세 분야 모두에서 강력한 잠재력을 가졌다. 세계 1위 조선,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모빌리티 기술, 발전용 연료전지 부품 및 시스템 역량을 두루 갖췄고, 한때 발전용 연료전지 보급량과 수소차 양산에서 세계를 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리한 출발선이 영구적 우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수소 상용차와 대규모 시범도시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 중이고, 미국은 리쇼어링으로 자국 공급망을 재구축하며, 일본도 자국 기업 중심 시장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개설하기로 한 청정·일반수소발전 입찰 시장을 중단했다.
연료전지 산업 육성은 단순한 신산업 개척이 아니라 기존 주력 산업과 시너지를 내며 산업 체질을 바꿀 전략적 기회다. 한국은 세계 조선 산업을 이끌고 있지만, 대형 선박 엔진의 80% 이상을 유럽에 의존한다. 연료전지 추진 선박으로의 전환은 이 종속 구조를 국내 기업 중심으로 재편할 기회다. 항공과 UAM 분야에서는 현대차그룹과 한화시스템, KAI의 역량이 연료전지와 결합할 수 있고,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대규모 확장을 앞둔 국내 IT 기업들과 연계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내수시장이 필수적이다. 내수는 기술을 검증하고, 비용을 낮추고, 해외 바이어가 요구하는 설치 실적을 쌓는 토양이다. 이 토양 없이 세계시장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것은 씨앗 없이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는 연료전지 시대의 문을 열고 있다. 한국은 그 문 앞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문을 닫고 있다. 자원 빈국인 우리가 에너지를 수출할 꿈을 꿀 수는 없다. 그러나 강건한 산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에너지 기술과 제품’은 수출할 수 있다. 연료전지 수출 산업화라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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