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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반지하이닉스’·‘원룸전자’ 난리난 반지하 실험실…고3이 주말마다 반도체 만드는 이유 [덕후 계산기]

한 고등학생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수십억 원짜리 장비와 방진복을 갖춘 대학 연구소나 먼지 한 톨도 허용되지 않는 클린룸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반도체 실험을 서울 시내 반지하 작업실에서 척척 하는 모습에 누리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지하이닉스’·‘원룸전자’로 화제를 모은 박정민(18·가명) 군의 반지하 실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정민 군 제공

“반지하이닉스네”, “원룸전자 아니냐.”

한 고등학생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수십억 원짜리 장비와 방진복을 갖춘 대학 연구소나 먼지 한 톨도 허용되지 않는 클린룸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반도체 실험을 서울 시내 반지하 작업실에서 척척 하는 모습에 누리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3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알고리즘을 뒤흔든 주인공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공학 덕후’ 박정민(18·가명) 군이다.

픽셀 게임 만들던 소년은 왜 반도체에 빠졌나

정민 군이 처음부터 반도체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직접 활을 쏘고 몬스터를 처치하는 2D 픽셀 게임을 개발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게임 서버를 개발하며 컴퓨터 구조를 공부하게 된 게 앞으로의 방향을 바꿨다.

“고1 때까지는 게임 서버 개발에 열중했어요. 그런데 서버를 제대로 다루려면 결국 컴퓨터 아키텍처를 알아야 하더라고요. 공부하다 보니 아키텍처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이걸 더 깊게 파보자’ 결심했고, 자연스럽게 반도체 소자 연구로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정민 군은 지난 1년 동안 본격적으로 반도체 실험에 매달렸다.

박정민(18·가명) 군이 모아놓은 실험한 소자들 일부. 박정민 군 제공

1100도 장비 돌리고 밤 11시 퇴근…고3의 주말 루틴

반도체 공정에는 고온과 정밀 장비가 필수적이다. 정민 군은 용돈과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300만원짜리 열처리 장비를 들였다. 보안경, 방독면 등 이것저것 재료비까지 합치면 지난 1년간 500만원에서 1000만원가량이 들어갔다.

주말 실험 루틴은 이렇다. 오전 10시쯤 작업실에 도착하면 먼저 장비를 예열한다. 열처리 장비는 1100도까지 올려야 하는데, 과부하를 막으려면 천천히 가열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준비에만 3~4시간이 걸린다.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는 도핑, 소자 측정, 해석을 반복한다.

실험을 하며 가장 애를 먹는 건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장비를 대체하는 일이다. 웨이퍼 위에 균일하게 코팅층을 형성하는 ‘스핀코터’(spin coater)는 가장 저렴한 제품도 200만원을 넘는다. 정민 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드웨어에 능한 학교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현재 그 친구가 스핀코터를 직접 제작해주고 있다.

실험의 아이디어는 반도체 전공서적 및 관련 논문을 비롯해 해외 DIY 반도체 유튜버들의 영상,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부터 얻는다.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영상과 여러 자료를 찾고 풀리지 않으면 AI와 머리를 맞댔다.

박정민(18·가명) 군이 포토레지스트로 만든 패턴. 박정민 군 제공

가장 큰 돌파구는 올해 초 저명한 대학 교수들에게 무작정 보낸 이메일이다. 당시 그는 만든 소자를 측정할 때마다 결과가 들쑥날쑥하게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 10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한 교수로부터 답장이 왔다. 이후 연구실을 방문해 박사과정 대학원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실리콘 도핑을 한 곳에 전기가 당연히 잘 통하는 줄 알았어요. 소자 특성이 이상한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예 전기가 통하지 않았던 거였어요.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실험만 반복하며 삽질을 했던 거죠. 원인을 찾아 개선한 뒤 소자가 정상적으로 측정됐을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정민 군은 실리콘 웨이퍼에 불순물을 넣어 전도성을 주는 도핑 공정을 어느 정도 구현했다고 밝혔다. 최근 영상에서는 최종 목표인 모스펫(MOSFET) 제작에 앞서 공정을 검증하기 위한 다이오드 제작 실험을 진행했다. 정민 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자기기 칩의 핵심 소자인 모스펫을 직접 구현하는 것이다.

“집주인도 실험하는 거 아시나요?”…알고 보니 조부모 댁

영상이 화제가 되자 댓글창에는 응원만큼이나 걱정도 쏟아졌다. “화학 물질을 쓰는데 집주인은 허락한 게 맞느냐”, “환기는 제대로 되는 건가?”,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이 반지하 작업실은 다름 아닌 정민 군의 조부모 댁이다. 화장실이 집 밖에 있을 정도로 오래된 주택이라 세가 잘 들어오지 않아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이었다.

정민 군은 “아버지가 취미 활동을 할 거면 여기서 해보라고 하셨다”며 “그 공간이 없었으면 실험 자체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지 덕에 무상으로 전용 연구실을 얻은 셈이다.

박정민(18·가명) 군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프로브랩’에 달린 댓글들. 유튜브 채널 ‘프로브랩’ 갈무리

안전성과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정민 군은 직접 해명했다. “보안경과 장갑은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있다”며 “독성이 강한 위험한 화학 물질 대신 일반인도 구할 수 있는 광감성 페인트 등 대체 물질을 찾아 실험했다”고 말했다. 또 실험 중 발생한 가스가 실내에 축적되지 않도록 서큘레이터와 국소배기장치를 함께 가동하는 등 환기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민원이 접수되면서 지난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 화학안전과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정민 군의 작업실을 찾아 실태조사를 벌였다.

화학안전과 관계자는 “안전 및 관련 법규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접수돼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차 방문했다”며 “개인이 이런 실험을 하는 경우는 처음 접하는 일이다 보니,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여러 법규에 저촉되는지 각 기관의 면밀한 확인을 거쳐 최종 결론이 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정민 군은 “그동안 실험하며 발생한 화학 폐기물은 단 한 번도 무단으로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두었다”며 “화학 물질 관련 공정에 종사하시는 아버지 지인을 통해 절차에 맞게 전량 안전하게 위탁 처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넘어 로켓까지…“공학이면 다 좋다”

실험 과정을 전부 유튜브에 공개하는 건 그의 선택이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만 돼도 기술 노출 우려로 실험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정민 군은 “어차피 핵심 노하우는 영상에 다 담지 않았고, 저 역시 해외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데만 1년이 걸렸을 정도로 변수가 많아 쉽게 따라 하긴 힘들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오히려 영상을 올린 덕분에 저렴하고 교육적인 반도체 교구를 만드는 기업 대표로부터 장비 지원을 제안받았다. 또 실험을 도와주겠단 연락도 여럿 닿았다.

‘반지하이닉스’·‘원룸전자’로 화제를 모은 박정민(18·가명) 군

스스로를 반도체 덕후보다 ‘공학 덕후’에 가깝다고 밝힌 정민 군.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 화학공학, 신소재공학 등 다양한 공학 분야를 폭넓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장기적인 꿈은 로켓을 만드는 기업가다.

“미국에는 차고(Garage)에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DIY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잖아요. 반면 한국은 그런 문화나 커뮤니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제가 만든 채널과 커뮤니티를 더 키워서 나중에는 시청자들과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거대하고 유의미한 공학 프로젝트를 꼭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 덕후계산기

# 공학

#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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