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상대책’을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모습 (출처 | 청와대)
중동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월 800억달러를 돌파했다. 수출 증가율 역시 1988년 8월 이후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실질 수요 증가가 수출 호조를 이끌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는 되레 뒷걸음질하고 있다. 경기전망지수(SBHI)는 80.8로 전월 대비 1.7포인트 하락했고, 제조업은 7.4포인트 급락했다.
수출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현장의 경기 인식은 악화하면서 지표와 체감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31일 중동 전쟁에 따른 민생 및 기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고,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1인당 최대 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월간 300억' 첫 돌파" 반도체 하나가 수출 판을 바꿨다...그런데 왜 '호황 체감'은 없는지…제조업 SBHI 7.4p 급락, 매출 부진 49%
산업통상부가 4월 1일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3% 증가한 861.3억 달러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257.4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더불어 반도체 수출은 151.4% 늘어난 328.3억 달러로 사상 처음 월간 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35%로 1년 전보다 15.1%포인트 확대됐다.
대중국 수출은 64.2%, 대미 수출은 47.1% 증가했으며, 미국향 수출은 반도체와 컴퓨터가 각각 392%, 273% 급증한 영향으로 163.4억 달러를 기록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을 근거로 반도체 수출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올해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85%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진욱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반영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4%, 2.0%로, 기존보다 0.2%포인트씩 상향 조정했다. 업계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점을 이번 수출 확대의 핵심 배경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전망지수(SBHI) 표(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전망조사표)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은 고유가, 공급망 불안, 내수 침체가 겹친 삼중 부담에 놓여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월 30일 발표한 ‘4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경기전망지수(SBHI)는 전월보다 1.7포인트 하락한 80.8을 기록했다. 기준선 100을 밑도는 점수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특히 제조업 부문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제조업 지수는 전월 대비 7.4포인트 급락한 80.7로 집계됐다. 세부 업종별로는 고무제품·플라스틱(-17.2p), 섬유제품(-16.3p) 등 18개 업종이 전월 대비 하락했다. 반면 반도체·전자부품은 4.3포인트 상승해 예외적인 흐름을 보인 반면, 대다수 제조업 업종이 뚜렷한 침체 신호를 나타낸 셈이다.
한국은행의 이흥후 경제심리조사팀장도 반도체를 비롯한 IT 부문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이란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불확실성 확대가 지수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꼽은 경영 문제의 최대 요인은 ‘매출 부진’으로 49.0%에 달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상승이 37.9%, 업체 간 경쟁 심화가 31.7%, 인건비 상승이 30.3%로 뒤를 이었다. 소비 심리 역시 위축되는 모습이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3월 전월보다 5.1포인트 하락한 107.0으로 집계됐고, 특히 '향후 경기 전망' 구성 지수가 12포인트 급락해 불안을 더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들은 이 같은 수치를 두고 “중동 분쟁 여파가 물가·공급망·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추경 효과 vs 전쟁 장기화…GDP +0.2%p 전망, 그러나 경고음도
이에 정부는 지난 31일 유가 대응, 취약계층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공급망 안정을 중심으로 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추경이다. 핵심은 ‘고유가 부담 완화 3대 패키지’로, 고유가 피해지원금, 석유 최고가격제 재원 보강, 대중교통 환급 지원이 담겼다. 소득 하위 70% 국민을 대상으로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차등 지급한다. 석유 최고가격제 등 에너지 부담 완화에도 5조 원이 배정됐고, K-패스 대중교통 환급률도 한시적으로 최대 30%p 확대한다. 산업·공급망 안정에는 2.6조 원이 투입된다. 피해 수출기업에 정책금융 7.1조 원을 공급하고, 수출 바우처를 7000개에서 1.4만 개로 2배 확대한다. 나프타 수급 안정을 위해 5000억 원의 수입 비용 지원도 편성됐다.
이번 추경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 없이 25.2조 원의 초과 세수와 1조원의 기금 재원으로 조달되며, 이 중 1조원은 국채 상환에 활용된다. 정부는 이에 따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1.6%에서 50.6%로 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추경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이 0.2%p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일(2일) 국회를 찾아 이번 추경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할 예정이며, 여야는 4월 7~8일 예결위 심사를 거쳐 10일까지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결국 한국 경제는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쓰고 있지만, 고유가와 공급망 불안, 내수 침체가 겹치며 현장의 체감 경기에는 불안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 지표의 훈풍이 실제 산업 전반과 가계 생활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 이번 추경의 집행 속도와 국회 처리, 그리고 대외 불확실성의 향방이 향후 한국 경제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인기키워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