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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형일의 IT직설] "빅딜 마다 대성공"…하이닉스 신화의 비밀은 'SK DNA'

'SK하이닉스'의 기업 변천사는 유독 독특하다.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83년 2월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반도체를 설립했고, 1999년 정부 주도의 이른바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합병했다. 이후 현대그룹...

[박형일의 IT직설] "빅딜 마다 대성공"…하이닉스 신화의 비밀은 'SK DNA'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무홀에서 열린 ‘퓨처테크포럼 AI’에서 ‘AI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뉴스퀘스트=박형일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SK하이닉스’의 기업 변천사는 유독 독특하다.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83년 2월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반도체를 설립했고, 1999년 정부 주도의 이른바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합병했다.

이후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로 계열에서 분리된 뒤 한동안 채권단 관리 체제를 거쳤고, 2012년 SK그룹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도 재벌 간 인수·합병이나 사업 양도·양수 사례는 간혹 있었다. 삼성그룹의 방산 부문이 한화로 매각되거나 삼성종합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이 정리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대, LG, SK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 그룹을 모두 거친 기업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유일하다.

이 같은 하이닉스의 기업사는 현대의 뚝심, LG의 정도경영, SK의 인수·합병 DNA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의 하이닉스를 만든 중요한 유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하이닉스의 뿌리는 현대전자공업(이후 현대반도체로 개명)에 있다.

정주영 회장이 주변의 강한 반대를 뚫고 설립한 회사다. 당시에는 그룹 총수가 결정하면 대부분 관철되던 시절이었지만, 현대전자 설립만큼은 예외였다.

현대그룹 내부는 물론 관계·정계·언론계까지 현대전자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전자산업이 현대그룹의 중후장대한 기업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건설과 토목, 중공업 중심의 현대그룹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현대 신화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가적 뚝심이 작동했다. 당시 재계 1위를 놓고 삼성과 경쟁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경쟁 업종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첨단 반도체를 둘러싼 양 그룹의 정면 승부가 시작됐다.

다만 건설과 조선 중심의 현대그룹 기업문화는 반도체 사업과는 결이 달랐다. 공장 건설 자체는 기존 역량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초정밀 장비와 미세 공정을 통제할 기술력은 부족했다.

현대반도체는 한동안 수율 문제로 고전했고, 경영 지표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졌다.

1999년 LG반도체 인수·합병은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소떼를 이끌고 방북하며 남북 교류의 물꼬를 텄고, 이런 정치적·상징적 성과 속에서 현대반도체는 덩치가 더 크고 내실 있던 LG반도체를 품게 됐다.

그러나 몸집만 커진 현대반도체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속에 계열에서 분리돼 채권단 관리 체제로 넘어갔고, 때마침 2000년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반도체 업황은 급격한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

하이닉스의 고난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회사는 ‘주인 없는 기업’이 됐고, 이른바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생존을 이어가야 했다.

이 시기 현대 특유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질이 다시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채권단이 선임한 전문경영진은 대규모 설비투자 대신 기존 설비를 재구성하는 ‘블루칩 프로젝트’로 불황을 버텨냈고, 결국 2012년 SK그룹에 인수됐다.

사실 SK그룹은 창업보다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온 DNA를 가진 기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M&A 성공 DNA가 현재 하이닉스 성공 신화의 밑바탕이 됐다.

SK의 주력 사업인 정유, 통신, 반도체 모두 인수·합병을 통해 키워낸 산업이다.

반면 창업 중심으로 성장한 삼성, 현대, LG는 오랫동안 인수보다 창업이 한 단계 위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경영은 결국 결과로 말한다.

SK가 인수한 기업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최태원 회장의 과감한 베팅이다.

당시 하이닉스 인수 실무를 맡았던 박정호 부회장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유력 인수 후보였던 LG가 참여를 포기하고, STX마저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하이닉스 인수전은 급변했다.

결국 하이닉스 주가는 급락했고, 인수 대금은 당초보다 2000억 원 이상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SK에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SK는 이전에도 굵직한 M&A를 통해 성과를 쌓아왔다.

유공과 SK텔레콤 모두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인수 이후 국내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수 기업의 장점을 흡수하고 재창조하는 SK 특유의 M&A 역량이 작동한 결과다.

이를 단순히 정권과의 관계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미래를 읽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SK의 또 다른 강점은 ‘액티브한 경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방북 당시의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최태원 회장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동행한 그룹 총수들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며 일정을 기록했다. 주변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데 집중했다.

이 기록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핵심 참모들과 공유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디지털 친화적인 기록과 공유 문화가 조직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58%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를 웃도는 수준이다.

성과급 역시 파격적이었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일반 직장인이 평생 만지기 어려운 규모의 보상이 지급됐다.

과거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도 추진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자금 조달과 사업 확장을 위해 최태원 회장이 미국에 장기 체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형일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올해 들어서만 젠슨 황과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미국 실리콘밸리에 약 100억 달러를 투자해 가칭 ‘AI 컴퍼니’를 설립하고, 글로벌 AI 투자를 총괄할 계획도 추진 중이다.

SK그룹이 AI 반도체, 클라우드, 서비스에 이르는 ‘뉴 AI 청사진’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지 주목된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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