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박한슬의 숫자뒤집기] 사교육비, 총액만 줄고 편차는 늘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되, 위로 올라가려는 상승 욕망을 거세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업 기술은 물론 AI같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중국에 무섭게 추월당하는 중인 요즈음에 이런 세계관이 타당한가.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의 숫자뒤집기] 사교육비, 총액만 줄고 편차는 늘었다

사교육비 분포의 양극화가 여러 층위에서 진행 중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27조5,35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5.7%, 1조7,000억원 줄었다. 5년 만의 감소 전환이다. 이를 근거로 사교육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결론 내리기엔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같은 기간 학생 수 자체가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생 수는 502만 명으로 전년보다 12만 명, 약 2.3% 줄었다. 사교육비 총액 감소율이 5.7%니 이를 감안해도 줄어든 건 맞지만, 감소폭이 발표보단 작다. 게다가 총액 기준으로만 사교육비를 따지면, 더 중요한 내부 변화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편차다.

▶ 아이는 줄고, 지출은 늘었다

같은 해 자료에서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1인당 월평균 지출은 60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다. 고등학생 기준으론 월평균 79만3,000원이니, 10년 전과 비교하면 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126% 뛰었다. 그런데도 왜 총액은 감소했을까. 학생 수 자체의 감소에도 영향이 있지만, 사교육을 시키는 가구 자체가 작년보다 4.3%포인트 떨어져 75.7%로 바뀌었다는 게 중요하다. 사교육비가 0인 가구, 다시 말해 사교육 자체를 ‘포기’한 가구가 작년보다 4%포인트 이상 늘어났단 얘기다. 사교육비 총액이 줄어든 진짜 이유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소득별 사교육 격차다. 월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사교육비는 66만2,000원, 참여율 84.9%다. 300만원 미만 가구는 19만2,000원에 참여율 52.8%다. 3.4배 차이다. 중간 구간(20만~100만원) 비율은 줄고, 양 끝이 늘고 있다. 게다가 월 100만원 이상 지출 비율은 서울이 24.6%,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덜 된 읍면지역 기준 4.4%다. 사교육비 분포의 양극화가 여러 층위에서 진행 중이란 뜻이다. 소득이 높은 가구는 투자를 강화하고, 낮은 가구는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다.

▶ 계층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은 단순히 교육에만 관련된 주제가 아니라, 가족의 재생산과 가정 내 자원의 재분배 측면에서 살펴야 할 우리 사회의 핵심 주제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경섭 석좌교수가 지적했듯, 전 세계 산업사회들 가운데 최고 수준인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상당 정도 그들 자녀의 장기간 교육에 대한 비용 부담에 따른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어서다. 자신의 노후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녀 사교육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서 가족 혹은 계층을 재생산하려는 욕구가 강했단 얘기다.

이런 욕구가 실익(實益)이 없는 것도 아닌 게, 미국에서 교육 수준과 소득을 장기간 추적한 연구들은 거의 일관된 결론을 낸다. 교육 격차로 인한 소득 격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단 점이다. 대표적으로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앤 케이스 명예교수는 1970년대 기준 대졸 이상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의 소득은 고졸 노동자들의 소득보다 평균 40퍼센트가 높았으나, 2000년이 되자 이러한 '소득 프리미엄'이 무려 80퍼센트로 두 배가 됐음을 지적한다. 할 법한 투자인 셈이다.

그러니 사교육 참여율 하락은 교육열 냉각이 아니라 계층 분기(分岐)의 징조라고 보는 게 맞다. 박지우 작가가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에서 묘사했듯, 스웨덴 상류층이 사립학교와 해외유학에 수천만원을 쓰는 반면 보통 가정은 사교육에 무관심한, 실질적으로 계급화된 평등 사회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서다. 자녀 입시 비리로 곤혹을 겪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말했던 “가재·붕어·개구리도 개천에서 행복한 사회”가 도래하는 중인 걸까.

▶ 사교육 방향성부터 밝혀야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현상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관점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은 오랫동안 가구 단위의 자기 계발과 재투자를 통해 ‘더 나은 상황’으로 뻗어가려는 욕망을 긍정해왔다. 정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월욕망(megalothymia)을 긍정하는 진영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단기간에 막대한 수준의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사교육 참여율 감소는 이런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에 가깝다. 노력해봤자 제대로 성과를 내기 어렵단 인식이 짙어지니, 그냥 포기하는 이가 느는 게다. 그러니 보수적 관점에서 이번 ‘사교육비 총액 감소’는 나쁜 현상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난하더라도 적당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되, 위로 올라가려는 상승 욕망을 거세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업 기술은 물론 AI같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중국에 무섭게 추월당하는 중인 요즈음에 이런 세계관이 타당한가.

박한슬 약사·작가 hanseul1135@gmail.com

박한슬 약사·작가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