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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종면칼럼] 권오현의 '다시, 초격차'와 삼성전자 노사해법

사측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에 대해 영업이익 10% 기준의 상한 폐지를 제시했고, 기존 OPI...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자 전문경영인의 상징이기도 한 권 전 회장은 최근 펴낸 '다시, 초격차'에서 지금 한국 기업이...

[박종면칼럼] 권오현의 '다시, 초격차'와 삼성전자 노사해법

전영현 등판에도 교섭 중단…'벼랑 끝' 대치

문제는 액수아닌 성과보상체계에 대한 신뢰

총파업 막으려면 새 제도 노사함께 만들어야

"삼성 경영진, '관리자' 아닌 '경영자' 돼야"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다시 멈췄습니다. 전영현 부회장이 직접 나서면서 대화가 다시 시작됐지만 재개 사흘 만에 노조는 교섭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사측의 교섭 적정성과 성실성 여부 판단을 요청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4월 평택 집회와 5월 총파업 계획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다만 사측은 완전 결렬은 아니라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종결이라기보다 벼랑 끝 대치에 가깝습니다.

이번 교섭이 다시 멈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는 상한 폐지의 방식 차이입니다. 사측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에 대해 영업이익 10% 기준의 상한 폐지를 제시했고,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인 연봉 50%를 넘는 부분은 자사주로 지급하는 절충안을 냈습니다. 그것도 3분의 1씩 나눠 즉시, 1년 뒤, 2년 뒤에 매도할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노조는 현금 지급을 포함한 명확한 제도화를 요구했습니다.

둘째는 사업부 간 형평성 문제입니다. 메모리 사업부에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주겠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는 적자 개선 시 25% 추가 지급 또는 특별 포상 프로그램을 통해 OPI를 100%까지 확대하는 조건부 안이 중심이었습니다. 노조는 이것으로는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의 동기부여가 어렵다고 봤습니다. 셋째는 교섭 태도에 대한 인식 차이입니다. 사측은 전향적 안을 냈다고 판단했지만 노조는 기존 입장의 반복에 가깝다고 보고 불성실 교섭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볼 인물이 이달 초 '다시, 초격차'를 펴낸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입니다. 그는 삼성에서 은퇴한 뒤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회장이 세운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아 스타트업 지원과 멘토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자 전문경영인의 상징이기도 한 권 전 회장은 최근 펴낸 '다시, 초격차'에서 지금 한국 기업이 마주한 가장 큰 적으로 '성공의 저주'를 지목했습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절대화한 나머지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제도와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병폐가 결국 조직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세 갈래에서 다시 꼬인 노사협상

지금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이 틀로 보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삼성전자는 오랜 세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보상과 관리의 틀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20여 년 전 만든 그 틀이 지금의 삼성전자에도 그대로 맞느냐는 점입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와 모바일·가전·디스플레이가 함께 있는 복합기업입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과 글로벌 인재 쟁탈전까지 겹쳤습니다. 회사의 구조와 환경은 크게 달라졌는데 보상체계의 기본 틀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권오현은 '다시, 초격차'에서 전작 '초격차'보다 제도와 시스템을 더 강조합니다. '초격차'가 어떻게 앞서갈 것인가를 다뤘다면 '다시, 초격차'는 그 격차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더 많이 묻습니다. 아마도 권오현은 자신이 30년 이상 몸담았던 삼성전자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책의 뒷부분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도 가장 먼저 삼성전자와 함께 초격차를 달성한 선후배·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리더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누가 맡더라도 작동하는 구조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권오현이 "전략은 카피할 수 있어도 제도로 정착된 문화는 카피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전자 보상 갈등도 결국 같은 문제입니다. 돈을 얼마 더 줄 것이냐보다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권오현이 제시한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트러스트'(TRUST), 곧 신뢰입니다. 성과와 보상 제도는 투명하고(Transparent), 합리적이며(Reasonable), 이해하기 쉽고(Understandable), 간단하며(Simple), 믿을 만해야 한다(Trustable)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지금 삼성전자 보상 갈등을 바라보는 기준으로도 적절합니다. 기존 OPI는 재무관리 차원에서는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반영하고 상한을 두어 비용을 관리하는 방식은 회사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충분히 투명하지 않았고,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며, 구조도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회사는 합리적이라고 설명하지만 직원들은 불공정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간극이 커지면서 갈등도 커졌습니다.

성공 공식 오래될수록 갈등 커져

이번 노사 협상 중단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영현 부회장은 분명 룰을 바꿀 뜻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상한 폐지 문제를 정면으로 테이블에 올렸고 메모리와 비메모리 각각에 맞춘 차등안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권오현의 표현을 빌리면 중요한 것은 룰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디테일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사주 지급 방식은 회사로서는 장기 보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노조에는 현금이 아닌 데다 매도 제한까지 걸린 방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메모리에는 경쟁사 이상 보상을, 비메모리에는 조건부 추가 보상을 제시한 것도 회사로서는 현실적 차등일 수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구조적 격차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사측은 '방어적인 혁신'을 시도했고 노조는 '공세적인 혁신'을 요구한 셈입니다. 양쪽 모두 변화를 말했지만 변화의 수준과 속도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권오현은 '다시, 초격차'에서 좋은 인재가 남으려면 세 가지 미(味), 곧 의미와 흥미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일의 의미가 큰 회사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투자, 국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는 흥미와 재미가 큰 분야입니다. 하지만 보상이 신뢰를 잃으면 의미와 흥미와 재미만으로는 사람을 붙잡기 어렵습니다. 애사심만으로 인재를 지키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특히 반도체 인재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거세질수록 보상체계의 설명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은 더 중요해집니다.

좋은 인재 지키기 위한 4가지 조건

권오현의 '다시, 초격차'가 주는 또 하나의 시사점은 문화는 말이 아니라 구조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메모리의 성과는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같은 미래 전략 사업을 계속 조건부 보상에만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메모리 성과를 무조건 희석해서도 안 되고, 비메모리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이 균형을 제도로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전사 공통 몫과 사업부 차등 몫을 구분하는 다층 보상체계일 것입니다. 회사 전체가 함께 만든 성과는 함께 나누되 초과 성과를 낸 조직에는 별도 보상이 가능해야 합니다. 동시에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는 단기 흑자 여부뿐 아니라 수율 개선, 고객 확보, 적자 축소, 로드맵 달성 같은 전환 지표를 함께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미래 전략 사업도 계속 동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이번 개편은 '특별 포상 프로그램'이 아니라 '명문화된 제도'로 가야 합니다. 노조가 말하는 제도화도 결국 여기에 가깝습니다. 회사가 해마다 상황에 따라 임시로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습니다. 현금이냐 자사주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공식이 보여야 하고 반복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도 예측할 수 있고 회사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권오현이 '다시, 초격차'에서 강조한 것은 결국 이런 시스템의 힘입니다.

권오현은 '관리자'와 '경영자'를 구분합니다. 관리자는 지시하고 통제하지만 경영자는 질문하고 미래를 설계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삼성전자 노사에게 필요한 것도 이 질문입니다. '상한을 없앨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를 넘어서 "삼성전자에 맞는 새로운 보상 시스템은 무엇인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노조도 '더 많이'만이 아니라 '더 믿을 수 있게'를 요구해야 합니다. 회사도 "복합기업이라 어렵다"는 설명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복잡한 회사일수록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놓아야 합니다. 공정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원칙으로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초격차'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할 일

결국 다시 권오현의 말로 돌아가게 됩니다. "1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1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지금 삼성전자가 시험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초격차는 기술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붙드는 제도, 성과를 납득 가능하게 나누는 구조, 장기 투자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장의 신뢰를 잃지 않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삼성전자 노사가 이번에도 '얼마를 더 줄 것인가'만 놓고 싸운다면 5월 총파업 위기는 일회성 갈등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번 파행을 계기로 '어떤 미래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함께 묻기 시작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보상체계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영현 부회장의 등판이 협상의 문을 다시 열었다면 이제 그 문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제도의 신뢰'입니다. 끝으로 삼성전자 노조원들은 물론 특히 이재용 회장과 전영현 부회장, 박학규 사업지원실장도 권오현의 '다시, 초격차'를 꼭 한 번 정독해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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