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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승직상점서 웨이퍼까지…130년 두산, 또 한 번 간판 바꾼다

서울 종로4가 광장시장 초입. 지금은 귀금속 상가와 상가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섰지만, 이 일대는 두산 출발점인 박승직상점이 문을 열었던 자리다. 1896년 포목점으로 첫발을 뗀 회사가 13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이번에는 반도체 웨이퍼를 품을 채비를 하고 있다.

박승직상점서 웨이퍼까지…130년 두산, 또 한 번 간판 바꾼다

포목점에서 출발한 두산, 맥주로 성장 발판 마련

페놀사태 뒤 사업 재편···소비재 접고 중공업으로

SK실트론 인수전 막판···두산 새 성장축 시험대

[포인트데일리 윤은식 기자] 서울 종로4가 광장시장 초입. 지금은 귀금속 상가와 상가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섰지만, 이 일대는 두산 출발점인 박승직상점이 문을 열었던 자리다. 1896년 포목점으로 첫발을 뗀 회사가 13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이번에는 반도체 웨이퍼를 품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된 두산은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본계약 체결 등 구체적인 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공시했지만, 4월 들어서는 이달 중 본계약 체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두산의 뿌리인 '박승직상점'. 사진=두산

두산 출발점은 포목점이었다. 박승직은 배오개 일대에서 상권을 키웠고, 그 뿌리는 훗날 두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두산 몸집을 본격적으로 키운 인물은 아들 박두병이었다. 박두병은 박승직상점 시절 맥주 대리점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뒤 소화기린맥주 경영을 맡았고, 1948년 이름을 동양맥주로 바꿨다. 두산이 한동안 소비재 기업, 더 정확히는 맥주회사 이미지로 읽힌 배경이다.

맥주는 두산을 키웠지만, 두산 발목도 잡았다. 1991년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가 터졌고, 대구 시민 신고가 빗발친 끝에 수질 대란으로 번졌다. 1차 사고 뒤 조업을 재개한 뒤에는 같은 해 4월 다시 유출 사고가 났다. 시민 분노는 불매운동으로 번졌고, 두산이 쌓아온 소비재 브랜드 신뢰도 함께 흔들렸다. 두산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돌아보는 장면도 여기서 나왔다.

두산은 그때 길을 틀었다. 1998년 오비맥주 지분 50%를 넘겼고, 2001년에는 남은 지분 대부분도 처분하며 사실상 맥주와 결별했다. 대신 손에 쥔 카드는 산업재였다. 두산 역사표를 다시 쓰게 만든 장면은 2001년 한국중공업 인수다. 박승직상점에서 시작한 회사가 오비맥주를 거쳐 중공업 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단 때가 이 무렵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0년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던 두산은 2022년 2월 관리 체제를 벗어났다. 숨을 돌리자마자 같은 해 4월 반도체 테스트 기업 테스나 인수를 마무리했고, 두산테스나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어 이미지센서 후공정 회사 엔지온까지 품으며 후공정 라인업을 넓혔다. 중공업 재편이 두산 2막이었다면, 반도체 진출은 3막 첫 장면이었다고 볼 만하다.

두산테스나 서안성사업장. 사진=두산테스나

그래서 SK실트론 인수는 외형 확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두산은 이미 두산테스나로 후공정 테스트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후공정만으로는 반도체 판을 주도하기 어렵다. SK실트론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 3위 기업으로, 반도체 앞단에 놓인 핵심 소재를 만든다. 현재 시장에서는 SK 측이 보유한 70.6% 안팎 지분이 거래 대상으로 거론된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테스트에서 웨이퍼까지, 뒤쪽에서 앞쪽으로 반도체 퍼즐을 넓히는 셈이다.

두산이 걸어온 130년을 보면 이번 행보도 낯설지 않다.. 포목으로 돈을 벌었고, 맥주로 그룹 뼈대를 세웠다. 페놀사태 뒤에는 소비재를 털어내고 중공업으로 넘어갔다. 채권단 관리 졸업 뒤에는 반도체 후공정으로 발을 들였다. SK실트론까지 더하면, 두산 간판은 다시 한 번 바뀌게 된다. 박승직상점에서 출발한 두산은 오비맥주를 거쳐 중공업으로 축을 옮겼다. 이번엔 웨이퍼를 앞세워 반도체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두산이 걸어온 사업 재편 흐름과 최근 반도체 투자 행보를 함께 놓고 보면 이번 인수전 의미도 더 또렷해진다.

아직 본계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두산이 향하는 곳은 분명해 보인다. 포목에서 맥주로, 맥주에서 중공업으로 옮겨온 두산은 이제 반도체를 다음 먹거리로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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