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고자산
[한국강사신문 박순웅 칼럼니스트] “아빠는 그림은 못 그리지만, 글은 잘 쓸 것 같아.”
10년 전 유치원생이던 첫째 딸의 한마디가 떠오릅니다. 그날 밤 아이는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회계법인 생활에 지친 채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작가하면 어떨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꺼냈던 순간입니다.
어린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일단 써 보세요.” 최종 심사평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웃으며 넘긴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오랫동안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잊고 있었지만 내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은 때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회계에도 이와 닮은 개념이 있습니다. 재고자산은 아직 팔리지 않았지만 창고에 남아 있는 자산을 말합니다. 당장 쓰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고, 어떤 물건은 창고 한쪽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필요해지기도 합니다.
결산 시점이 되면 기업은 창고에 남아 있는 재고자산을 하나씩 확인하는 재고실사를 진행합니다. 품목별로 수량을 세고, 때로는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상태를 확인합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제 자리에 있어야 할 품목을 분주히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부에 적힌 품목이 실제로는 사라져 있기도 하고, 오래되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장부에는 없었지만 창고 한편에서 발견되는 물건들도 있습니다. 가치가 없어진 물건은 폐기하고, 새롭게 발견된 항목은 장부에 추가로 적어 넣으며, 실제로 남아 있는 재고자산과 장부의 기록을 맞춰 갑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재고실사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잊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 포기했다고 생각한 꿈이 남아 있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누군가의 말이 여전히 마음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삶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당시에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때로는 훗날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잊고 있던 삶의 재고자산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속 보석상자에 고이 간직한 추억, 아직 내려놓지 못한 꿈처럼 말입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딸에게, 이제야 답합니다.
“아빠는 지금도 계속 쓰고 있어.”
칼럼니스트 프로필
박순웅 칼럼니스트는 공인회계사로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듯 삶을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삼일회계법인과 대주회계법인을 거쳐 현재는 한미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로 회계감사와 경영자문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스타트업 30분 회계』, 『스케일업 30분 회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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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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